6년째 공동저자로 활동…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최지혜 연구위원 인터뷰
지난 1년간 트렌드를 되짚어보고, 다음 해 우리 사회를 주도할 트렌드 키워드의 큰 흐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미래 트렌드 예측서가 있다. 11년째 한해를 마감할 때쯤 출간되고 있는데, 입시·취업 준비생, 기업 마케팅·홍보 담당자, 자영업자 등 분야를 막론하고 책의 분석에 주목한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이야기다.
책은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어떤 것에 반응하고, 소비할 때 어떤 영향을 받아 의사 결정을 하는지 등을 추적한다. 그리고 여기에 담긴 소비 트렌드 분석은 곧 현실이 된다. 올해는 황금돼지해인 기해년(己亥年)에 맞춰 'PIGGY DREAM'(돼지꿈)이라는 키워드를 내놨다. 영문 첫 글자를 모아 총 10개의 트렌드가 완성됐다. 최근 서울대 생활과학대학에 있는 연구실에서 '트렌드 코리아 2019' 공동저자인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최지혜 연구위원을 만났다.
'트렌드 코리아'에서 내놓은 키워드들은 한 개인의 직관이나 판단이 아닌 입체적인 분석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운영하는 '트렌더스 날(Trenders 날)'의 공(功)은 실로 혁혁하다. 이 '트렌드 헌터' 조직에는 약 20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특별한 자격조건은 없다. 정치, 경제, 광고 등 최신 트렌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
매년 3월 킥오프를 하는데, 트렌더스날 구성원들은 봄부터 여름까지 한 달에 한 번씩 '트렌드 다이어리(Trend Diary)'를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 제출한다. 트렌드 헌터로 활동한 트렌더스날의 이름은 '트렌드 코리아'에 등재된다.
"트렌드 다이어리들이 모이면 1000건가량의 트렌드 보고서가 만들어져요. 이 내용을 바탕으로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연구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8월에는 트렌드 선정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해요. 표제어도 공모하고, 투표도 함께 하죠. 다양한 업계에 종사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아무 조건 없이 모여서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십니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죠."
최 연구위원은 2014년부터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공저자로 참여하게 됐다. 햇수로 6년 차다. 책을 만들어가면서 본인의 특화된 분야를 찾게 됐다. "지금까지 제가 한 것을 보면, 말랑말랑한 것들이 많았어요. 숫자를 나오거나 어두운 키워드도 해봤지만, 부드러운 게 저랑 잘 맞더라고요."
2019년 키워드는 '돼지 꿈(PIGGY DREAM)'이다. 돼지의 첫 'P'를 따 첫 번째 소비 트렌드는 'Play the Concept(콘셉트를 연출하라)'가 됐다. 지난해 '히트상품' 트렌드를 분석했던 최 연구위원은 올해도 '히트상품'을 맡았다. 특히 책의 첫 장인 'P'를 써냈다. 일반적으로 소비트렌드 분석 중 가장 중요한 항목이 키워드의 가장 앞글자에 배치될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최 연구위원은 "순서도가 곧 중요도를 뜻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첫 번째 키워드가 콘셉트인 것은 소비자들이 라이프스타일을 연출하고 콘셉팅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문화가 바뀌었어요. 요즘은 자신을 소개할 때 말보다 사진 하나, 짦은 영상 하나로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드러내는 게 트렌드인 거죠."
2018년 키워드 중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중요 키워드가 됐다. 이처럼 여유를 찾고 싶은 개인의 바람이 담겼던 2018년 트렌드와 달리 2019년 키워드는 개인의 정체성에 중심을 두고 있다. 2019년은 원자화·세분화하는 소비자들의 시대적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정체성과 자기 콘셉트를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나'에 관심이 커졌어요. 젊은 세대는 어릴 때부터 개인의 특성을 강조한 교육을 받았잖아요. 그런 세대들이 성인이 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가 누구인지에 대해 좀 더 집중을 하는 것 같아요. 지난해 '소확행'과 같은 트렌드들도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하라'라는 게 메시지잖아요. 그런 요인들이 종합하면서 '나'에 집중하게 된다고 봤어요."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세대에 따라 특정 키워드에 대해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 이야기는 없느냐'고 한탄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최 연구위원은 "'트렌드 코리아'는 내년도 트렌드를 100% 예측하는 예언서가 아니다"라며 "이게 맞다, 맞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현상이 우리 사회에 왜 일어나고 있는지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년 트렌드를 예측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어르신들도 '소확행'의 줄임말이 무엇인지 안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해요. 익숙지 않았던 키워드가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감동적인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