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영화 등 무한복제 난무 디지털 세계에 원본 정착…금융사 없이 P2P 안전거래
본지는 5회에 걸쳐 블록체인 기술이 미래산업에 어떤 영향을 가져 올지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신뢰의 사슬 = 블록체인을 설명하자면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이란 개념을 빼놓을 수 없다. 분산원장이란 수많은 거래 정보를 한데 모아 데이터 일정 단위로 블록(장부)을 만들고, 이를 사슬(체인)처럼 차례차례 연결하는 기술을 말한다. 과거의 장부들이 연결돼 있고, 참여자 모두의 장부를 공유한다. 위조하기 위해선 이론적으로 네트워크 참여자의 절반 이상을 동시에 해킹해야 한다.
실생활에 블록체인이란 개념을 적용하면 이렇다. 주사위 보드게임 부르마블을 예로 들자.
네 명이 게임을 한다면 이 중 한 명이 은행 역할을 하고 게임을 돕는다. 이 경우 은행을 맡은 게임자가 몰래 은행 돈을 빼돌리거나 은행 게임자가 실수로 게임화폐를 분실할 수도 있다.
블록체인 환경에선 은행의 자산 변화를 기록한 내용을 모두가 공유한다. 누군가 게임을 조작해 은행의 게임화폐를 자신의 것이라고 위조하고 싶다면 최소한 게임자의 2분의1 이상(3명)과 공조해야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가상화폐(가상통화·암호화폐) 비트코인을 해킹하기 위해선 수만 개의 네트워크 참여자를 동시에 해킹해야 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인식되고 있다.
◇디지털 세계에 핀 독창성 = 위조(임의 조작)나 변조(수치 변형)가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장점은 많은 곳에서 활용될 수 있다. 사진, 음원,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들은 디지털로 존재한다. 디지털 기록물의 장점이라면 이동이 편하고, 관리 비용이 적다는 것이다.
반면 거의 모든 소유자가 복제물을 만들어 배포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 문제로 미디어 기업의 저작권 보호 문제가 아직까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다.
블록체인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세계에 하나뿐인 디지털 저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복사와 붙여넣기가 일상화된 디지털 세상에서 원본이란 개념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면 소유권이 명확한 디지털 콘텐츠가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얼리어답터 사이에선 블록체인으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양이 수집게임 크립토키티즈(Cryptokitties)가 유행하기도 했다.
◇블록체인의 첫 작품은 비트코인 =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이란 이론을 처음으로 실제로 구현한 디지털 콘텐츠다.
비트코인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난 1년 뒤인 2009년 나카모토 사토시(가명)란 인물에 의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을 기존 화폐와 달리 정부나 중앙은행,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개인 간(P2P) 빠르고 안전한 거래가 가능하게 설계했다. 금처럼 유통량이 한정돼 있다는 것이 특징인데 총 발생량은 2100만 비트로 현재까지 1675만5700BTC(2017년 12월 22일 기준)가 생성됐다.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을 발표하면서 금융위기의 본질적 문제 중 하나가 각국의 제한 없는 화폐 발행이라고 지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총 발행량이 2100만 개로 한정된 이유다. 중앙은행을 통한 화폐발행량을 조절하는 식으로 경제성장을 이뤄낸 주류 경제학자의 기본 철학과는 대치된다.
비트코인을 접한 이들은 디지털로 화폐(통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됐다. 소유권이 명확하고, 소유권을 이전하는 상황에서도 원래 주인이 복사본을 만들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세계 최대 부호 빌 게이츠는 “비트코인은 거래를 위해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등 물리적인 접촉이 필요없다”며 “대규모 거래에서 화폐는 상당히 불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쓴 하나의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이라고 말한다.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준 시작이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