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은행권 특혜채용 현장검사에서 전·현직 경영진의 자녀가 채용된 정황을 여러 건 발견했다. 이번 현장검사는 내부적으로 철통 보안을 유지한 채 불시에 진행됐으며, 특혜채용 의혹과 관련해 물증이 확보된 일부 의심 사례는 검찰 수사를 의뢰한다는 방침이다.
22일 금감원에 따르면 19일부터 검사역 30여 명을 투입해 은행의 채용절차와 인사·채용 시스템에 대한 현장검사를 벌였다. 이번 검사는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은행을 제외한 시중·지방은행이 모두 포함됐다.
지난 10월 국정감사 과정에서 우리은행 채용비리가 불거지면서 금감원은 전 은행에 대해 채용 과정과 시스템에 대한 자체 점검을 지시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자체 점검에 대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며 객관성 확보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의식한 듯 금감원은 사실상 전 은행에 대한 현장검사를 전격 실시했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에서 사실상 사법당국의 압수수색에 준하는 방식으로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채용담당 임원·부서장·실무자로부터 동의서를 받고 이들의 컴퓨터 등을 현장에서 뒤졌다. 금감원 검사는 통상적으로 피검 기관으로부터 필요한 자료를 가져오도록 요구하던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진행됐다. 앞서 은행들은 자체 점검한 결과 채용비리 정황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금감원에 보고했다. 공식적인 서류나 채용 담당자의 진술에만 의존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번에 현장검사에서 제외된 우리은행은 채용비리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이미 세 차례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채용비리 문제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퇴진했고, 22일 손태승 행장이 취임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신입사원 150명을 공채하면서 대상자 중 10%가 넘는 16명을 특혜 채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우리은행 인사팀의 ‘2016년 우리은행 신입사원 공채 추천현황 및 결과’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특혜를 받은 16명의 이름·성별·출신학교·추천인 등이 담겼다. 이 같은 의혹이 불거지자 이 전 행장은 지난달 2일 채용비리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한편 정부 합동으로 진행했던 공공기관 채용비리 조사도 사실상 이날 마무리됐다. 조사 결과, 금융권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일부 채용비리 관련 제보를 통해 금융위와 합동TF가 현장조사까지 나섰지만, 명확한 증거를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절차상 문제가 있던 곳은 관련자 문책 정도에서 정리됐다.
일각에서는 채용비리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채용 서류만 가지고 채용비리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금융권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금융권 한 인사는 “금감원이나 우리은행 사례에서는 명백한 비위사실이 있었고, 제보가 핵심적인 단서로 작용했다”며 “정작 현장조사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면 적발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