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는 지금]‘제살 깎아먹기式 과당 경쟁’ 자성 목소리

입력 2017-11-1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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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약 품목 수 줄이겠다” 초강수 자율 처방전

제약업계가 직접 나서 불법 리베이트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쌍벌제·투아웃제라는 정부의 초강력 억제 정책에도 리베이트 관행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업계의 묘안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신약 개발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복제약(제네릭)에 너도나도 뛰어들다 보니 리베이트 수수의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업계 스스로 ‘복제약 품목허가’를 제안하겠다는 초강수다. 이와함께 국제 윤리경영인증을 도입해 리베이트 조성 환경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최근 이사장단 회의를 열고 공동·위탁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으로 한꺼번에 여러 제약사가 복제약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의약품 품목수를 원 제조업소를 포함해 4곳(1+3)으로 줄이는 방안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건의키로 했다.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은 오리지널약과 동일한 성분으로 만들어진 복제약이 비슷한 약효를 나타내는지 검증하는 시험이다. 현재는 공동·위탁 생동과 관련해 제한규정이 없어 동일 성분을 가진 많은 수의 복제약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는 결국 과당경쟁으로 이어져 불법 리베이트가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동 생동 제한은 2007년에도 시행됐던 제도다. 당시 공동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제약사 수를 2곳까지 제한하기도 했지만 2012년 규제 완화 분위기와 맞물려 폐지됐다. 이번에 국내 제약사 대표 모임에서 이미 한 차례 실패를 경험했던 규제카드를 다시 꺼내든 데는 복제약 난립으로 인한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

협회는 공동 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제약사 수를 제한해 업체가 개별적으로 생동성 시험을 밟도록 하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복제약 출시 수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생동 품목수 제한은 지난해부터 심도있게 논의돼 온 과제”라며 “과거에도 시행됐다 좌초된 바 있지만 무분별한 복제약 난립에 따른 불법 영업을 조금이나마 줄이려면 복제약 품목수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식약처도 업계가 스스로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제안한 것인 만큼 적극적으로 검토해 시행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윤리경영 확립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제약바이오협회는 이달부터 국제 윤리경영 인증 기준인 ‘ISO 37001(반부패경영시스템)’을 도입하는 제약사를 대상으로 컨설팅에 나선다. 1차로 다음달부터 내년 5월 이전까지 녹십자·대웅제약·대원제약 등 이사장단에 포함된 8개사와 함께 코오롱제약 등 모두 9개사가 ISO 37001 도입·인증 절차를 밟기로 했다. 2019년까지 반부패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한 제약사는 50여 곳이다.

지금까지 제약업계는 ‘공정거래자율준수 프로그램(CP)’을 운영해왔지만 제약사가 자율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협회는 이보다 인증이 까다로운데다, 제약사는 물론 사업 관계자 등 이해 당사자에게도 적용되는 ISO 37001이 도입된다면 실질적인 반부패 효과가 작용해 의약품 유통시장이 더욱 투명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협회는 제약업계 불공정 거래의 온상으로 지목돼 왔던 CSO(영업판매대행) 기업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와 보건복지부 전수조사를 추진하는 방안 등도 장기적인 과제로 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협회는 리베이트를 없애기 위한 여러 방안을 강구해 왔지만 동시에 2~3개 정책이 추진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번만큼은 리베이트를 제대로 뿌리뽑아 보자는 업계의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다. 실제 제약사들도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며 긍정적인 자세로 동참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복제약 품목 수를 줄인다고 구조적인 리베이트 문제가 해결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의약품 허가권이 재산권이라는 인식이 큰 데다 복제약 이외에는 별다른 영업 전략이 없는 제약사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비용 부담이 큰 국제인증 도입도 자정 노력 수준의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형 제약사 입장에서는 복제약 시장 진입·진출이 제한돼 당장 매출 감소를 걱정해야 한다”면서 “협회가 컨설팅 비용만 지원할 뿐 인증에 드는 비용은 오롯이 제약사 몫이어서 전체 제약사로 도입이 확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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