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공간] 오늘도 달은 심심하다

입력 2016-09-1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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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자꾸 따라와요

어린 아들 앞세우고

아버지 제사 보러 가는 길

-아버지 달이 자꾸 따라와요

-내버려둬라 달이 심심한 모양이다

우리 부자가 천방뚝 은사시나무 이파리들이 바람에 솨르르솨르르 몸 씻어내는 소리 밟으며 판길이 아저씨네 마당을 지나 옛 이발소집 담을 돌아가는데

아버지 적 그 달이 아직 따라오고 있었다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에서

추석이 다가온다. 설이 전통적으로 송구영신하는 형식적인 예를 중시했다면 추석은 농사와 더위에 지친 심신을 위로하는 의미가 짙은 명절이다. 햅쌀로 밥과 술을 빚어 천신(薦新)하고 잘사는 집에서는 머슴에게까지 추석빔을 입혔다니 세시풍속 중 가장 풍성하고 즐거운 명절이었음은 틀림없다.

추석의 의미와 즐기는 방법은 날이 갈수록 달라진다. 그러나 아무리 산업사회의 추석이라 해도 귀향과 차례 등의 민족적 풍습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특히 올여름처럼 재앙 같은 폭염에 시달린 다음이고 보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추석과 그에 잇대는 연휴야말로 하늘과 조상이 주는 위로일 것이다.

추석을 대보름이라고 부르는 것은 연중 가장 크고 밝은 달이 뜨기 때문이다.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운 때여서 그렇다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그런 달을 슈퍼 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로부터 추석은 휘영청한 달의 명절이었고 달은 우리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이를테면 달은 우리의 밤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 바람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을 쓴 서정주 시인의 바람도 달이 다 내려다보고 있었을 터이고,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이 물레방앗간에서 동네 처녀를 쓰러뜨린 것도 달밤이었다.

출가한 딸이나 손 귀한 집 며느리의 수태를 빌던 것도 달이었으며 고난의 역사 속에서 징용 나간 남정네나 군대 간 아들의 무사귀환을 빌던 것도 달이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연인들이 밤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그리움을 의탁했던 것도 달이었다. 달은 우리 민족의 소원이나 연애를 다 알고 있었다. 오늘날 인공위성이 모든 통신을 연결해주듯 허공 중천에서 메신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아들이 어렸을 적 어느 해인가 고향집으로 제사를 모시러 간 적이 있었다. 차로 가는 시골길을 빠르게 따라오는 달이 신기했던지 아들은 달이 왜 자꾸 따라오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궁한 나는 달이 심심해서 그런다고 했다. 그 아들에 그 아버지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 아들의 아들은 지금 달에게 관심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달은 여전히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다. 심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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