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시론] 세비 반납이 反정치?

입력 2016-06-0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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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이 새누리당, 더민주당 등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세비 반납’을 결정했다. 7일 의원총회에서 결의를 한 모양인데, 정치권 안팎의 시선은 엇갈린다. 당초, 그러니까 지난 1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이 같은 방침을 밝히자 우상호 더민주당 원내대표는 바로 ‘전형적인 반정치 논리’라고 비판했다. 다음 날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 수석부대표도 “원 구성이 돼야만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부정적 입장을 내보였다.

두 사람의 반박 논리가 틀린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문제는 본질을 피해간 반응이라는 점이다. 국민의당이 세비 반납을 결의한 까닭을 정말 몰라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괴감 자책감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 세비 반납을 택한 것인데, 두 거대정당은 ‘돈’으로 대응했다. 우 원내대표의 경우 후에 ‘원론적 입장’이었을 뿐이라고 해명은 했지만 어쨌거나 좀스럽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겠다.

세비 반납 퍼포먼스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2008년 18대 국회 원 구성이 늦어지자 당시 한나라당 의원 26명이 6월분 세비 1억8000만 원을 모아 결식아동을 돕는 데 썼다. 또 2012년 6월 19대 국회 때도 새누리당 의원 147명은 한 달치 세비 13억6000만 원을 국군전사자 유해 발굴사업에 기부했다. 더민주당도 지난달 30일 소속 전 의원의 이틀치 세비 8179만5000원을 ‘부실채권 탕감’ 용으로 주빌리은행에 기부했다.

국회의원들로서는 세비를 노동의 대가인 ‘월급’으로 인식하는 것 같은 사회 분위기에 몹시 속상해할 만하다. 의원이 출석부에 사인하고 근무시간 지키며 주어진 책무를 수행하는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라고 생각하면 ‘국민 대표’라는 이름이 무색해지지 않은가. 그 점은 이해가 되지만 국민이 그걸 몰라서 ‘세비 반납’을 말하거나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의원들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중국 당나라 때의 고승 백장(百丈: 720~814) 선사는 90세가 되어서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주위에서 농기구를 감춰버렸다. 그러자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一日不食]며 종일 굶었다(조오현 편, ‘선문선답’).

선사의 밥이 밭일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이치를 백장 선사 같은 고승이 몰라서 노동을 고집했겠는가. ‘국민의 대표’가 되려면 남보다 더한 노고를 기꺼이 감당할 줄 알아야 한다.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국민에 대한 약속,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세비든 뭐든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모든 보수와 특혜는 거두어져야 한다. 그게 민심이라고 생각된다.

하긴 돈 많은 의원들이야 세비 반납에 별로 구애되지 않겠지만 형편이 어려운 의원들로서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이라고 생계가 어려워지면 마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생활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 하나가 결여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자만으로 의회를 구성할 일은 못 된다. 민주의회는 오히려 서민 출신 의원이 다수일 것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영국 의회가 1911년부터 의원 유급제를 실시하게 된 까닭도 다르지 않다. 의회를 언제까지나 귀족, 젠트리 계급에만 맡겨 둘 수는 없다는 국민적 자각과 반성의 소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의원에게 있어서 보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당연히 그렇게 인식돼야 한다. 세비 받으려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다만 국회의원으로서 활동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세비를 받는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세비를 반납하겠다는 것은, 자기희생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 가운데 하나다. 충분히 의미 있는 퍼포먼스라 할 수 있다. 뒤늦게 여야가 원 구성에 합의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국민의당의 압박이 아주 없었다고는 못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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