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 판결…가해 기업에 엄중한 책임 물은 사례로 국내 옥시 파문에 시사점
미국에서 존슨앤드존슨(J&J)의 땀띠용 파우더(탤컴 파우더)가 난소암을 유발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라 나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옥시 가습기 살균제 파문에 휩싸인 한국에서도 기업에 엄중한 책임을 물은 사례로서 시사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지방법원 배심원단은 3일(현지시간) 난소암 발병 피해를 본 62세 여성 글로리아 리스트선드에 총 5500만 달러(약 627억원)를 배상하라고 선고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이 중 500만 달러는 피해배상금이고, 징벌적 손해배상금은 피해배상금의 10배인 5000만 달러로 책정했다. 소송을 제기한 이 여성은 수십 년 동안 J&J의 탤컴 파우더를 사용했고 2011년 난소암 진단을 받아 난소를 적출하는 수술을 받았다.
문제의 탤크 가루는 20년 전부터 미국 소비자단체가 발암 가능성이 큰 물질로 지목했다. 그러나 J&J 측은 난소암 발병과 탤컴 파우더 간의 상관관계를 부정, 별도로 위험성을 소비자에 알리지 않았다. 배심원단은 이 물질의 유해성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같은 법원 배심원단은 지난 2월에도 파우더 등 J&J의 제품을 애용하다가 난소암 투병 중 사망한 앨라배마 주 여성 재키 폭스의 유족에게도 J&J 측이 720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돼 1000만 달러를 피해배상금으로, 6200만 달러는 징벌적 손해배상금으로 책정했다. 이로써 J&J은 한 법원에서 1억27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게 됐다.
이번 배심원 판결에서 적용된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일반적 손해배상의 수준을 넘어서 실제 피해액보다 훨씬 큰 금액의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형벌적 성격의 제도다. 영국·미국·캐나다 등 영미법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에서 주로 행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옥시 레킷벤키저의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해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J&J 제품 피해자의 소송이 잇달아 승소를 거두면서 이와 비슷한 사례로 제기된 나머지 소송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활석(탤크) 가루의 유해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J&J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은 1400건이 넘는다. 소송 일부를 맡은 마크 레니어 변호사는 J&J가 1970년대부터 이미 탤컴 파우더와 난소암의 연관관계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내부 문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J&J 측은 “배심원 판결은 지난 30년 동안 파우더에 쓰인 탤컴 파우더 안전성을 인정한 학계의 의견과 배치되는 것”이라며 항소의지를 밝혔다. 탤크 가루가 난소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는 오래전부터 제기됐지만, 아직 이에 대한 연구 결과는 엇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