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알파고와 조승우

입력 2016-03-18 10:45수정 2016-03-2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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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서울예술대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ㆍ한국뮤지컬산업연구소 소장

알파고가 화제다. 알파고를 스타로 내세운 구글은 이 세기의 대결 이벤트로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100만달러의 상금이 아깝지 않게 됐다. 100배 이상의 마케팅 효과를 누리기 때문이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대표는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고 외쳤는데 과장은 아니다.

인류가 인류를 극복한 40년 전 아폴로 11호의 그 혁명처럼 이제 구글은 IBM,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을 다 제치고 AI(인공지능) 분야의 선두주자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글로벌 리더가 됐다. 구글의 다음 대결 종목은 스타크래프트란다. AI가 두뇌 뿐 아니라 물리적인 손동작으로도 인간과 대결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대결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IBM은 ‘딥블루’라는 AI를 체스 게임에 동원해 세계 체스 챔피언을 이겼고 이후 ‘왓슨’을 개발해 미국의 인기 퀴즈쇼에 출연시켜 AI의 학습 능력을 과시했다. 18세기 1차 산업혁명 때도 증기기관차의 위력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과의 달리기 시합을 기획한 일이 있었단다. 아마 그때 인류에게 증기기관차는 공포였을 것이다. IBM의 왓슨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알파고가 위협적인 것은 사람의 뇌 신경세포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모방해 설계된 AI가 경험과 학습을 통해 스스로 지능과 직관까지 획득해 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 준 점이다. 그런데다 인간처럼 실패에 좌절하지도 않고 도전과 노력에 꾀를 부리는 게으른 습성도 없고 식욕과 수면욕도 없이 오로지 열정적으로 학습만 하도록 만들어 져 있으니 그 능력의 끝이 어딘지 모르는 것이다.

이제 갓 청년기에 접어드는 조카들에게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 특히 미래의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자주 SNS로 공유한다. 요지는 긴박하게 닥쳐오는 전혀 새로운 미래의 글로벌 리더가 되라! 조직은 붕괴되니 새로운 일을 창출하는 창업자가 되라!다. 30년 전, 인문지식인이 최고의 덕목이었던 시절에 지금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신종직업을 상상할 수도 없어 기질과 감각에 맞는 또 다른 삶의 기회를 잃은 나의 전철을 밟지는 말았으면 해서다. 그런데 시큰둥하던 조카들이 이번 바둑 대결을 보더니 실감하는 눈치다.

AI의 활약에 대한 가장 큰 우려로 인간의 노동력이 밀려나는 미래를 꼽는다. 미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현재 미국의 전체 직업 중 47%가 자동화로 대체될 것이라 전망했 다. 전문 분야 중에 노동집약적이고 그래서 고용 부담이 큰 직업부터 위험한데 지금 우리 사회를 강타하는 스타 직업인 셰프도 소멸 직업의 높은 순위란다. 창의적인 분야지만 재료의 조합으로 맛을 내는 원리다 보니 이미 AI ‘셰프 왓슨’은 고객의 식재료와 취향을 고려한 온갖 조리법을 알려주고 있다.

반면에 예술가는 0.042점으로 소멸 가능성이 낮은 연구 결과를 보였다. 하지만 AI는 이미 감각적인 창조 분야도 넘본다. 구글의 ‘딥드림’이 그린 추상화 29점은 경매에서 9만7천달러를 벌어 AI의 창작 저작권 문제도 대두된다. 예일대가 개발한 AI ‘쿨리타’는 음계를 조합해 음악을 만들고 일본의 로봇 여배우 ‘제미노이드 F’는 무대에서 대사와 표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는 예술을 모방하는 기술이어서 감탄할 뿐이지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인간의 의식, 감정, 창의성, 신념, 소명의식, 도덕의식 등 AI가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절대 영역은 있는 것이다. AI에 지배당할 미래가 두렵다면 그 절대 가치의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 된다. 인간이 왜 AI라는 대체 기계!를 탄생시켰는지 본질을 잃지 않고 스스로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 된다. 그럼 미래예측 능력이 대단한 레이 커즈와일이 예언한 AI가 인간을 넘어서는 특이점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알파고와 뮤지컬 무대의 고수 조승우배우가 연기 대결을 벌이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그리고 조승우의 백전백승을 확신한다. 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듯 불가사의한 흡입력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조승우의 매 회, 공연 기운에 따라 다른 호흡과 땀과 에너지를 어떻게 데이터화해서 학습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그 데이터의 주체는 관객과 조승우가 주고받는 보이지 않는 정서와 영혼의 교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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