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별 노조’의 지회가 노조를 탈퇴한 후 ‘기업별 노조’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IMF 이후 활성화된 산별노조의 결속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9일 발레오전장시스템 노동자 정모 씨 등 4명이 노조를 상대로 낸 총회결의 무효 등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산별노조 하부조직이라도 독립성 있다면 노조로 인정 가능”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산별노조 지회라고 하더라도 규약과 집행기관을 가지고 단체교섭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별개의 기업별 노조로 독립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반면 1,2심 재판부는 발레오만도 지회가 별도의 노조로 독립할 수 없다고 보고 원고 승소판결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발레오만도 지회가 법인 아닌 사단의 실질을 갖추고 있어 독립성이 있었는지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원심은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에서 산별노조 지회가 기업별 노조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든 대법관들의 의견이 통일됐다. 다만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발레오만도 금속노조 지회가 독립성을 인정할 수 있는 단체인가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있었다. 이인복ㆍ이상훈ㆍ·김신ㆍ김소영ㆍ박상옥 등 5명의 대법관은 “발레오만도 지회는 노동조합의 실질이 있는 단체라고 할 수 없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산별노조 타격 클 듯… ‘사측 악용 소지’ 지적도
소식을 접한 노동계는 산별노조의 결속력이 크게 떨어져 와해될 위기에 놓였다고 우려하고 있다.
금속노조 대리인 출신의 김기덕 변호사는 “대법원이 독립된 규약과 조직형태를 갖출 것을 내세웠지만, 산별노조 지회의 대부분이 이러한 요건을 갖추고 있어 사실상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는 범위를 크게 넓힌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발레오전장 사건처럼 기업이 산별노조를 와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도 크다”고 덧붙였다.
노동분야 전문가인 법무법인 세종의 김동욱 변호사는 “기존의 노동계에서는 산별노조를 만드는 게 기본 방향이었는데, 그 부분에 제동이 걸린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사용자가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은 일반화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는 의견을 밝혔다.
◇유사 사건에도 영향 클 듯
이번 판결은 대법원에 계류 중인 유사 사건에도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법원은 금속노조 산하 ‘상신브레이크지회’와 전국축산업협동조합노조의 ‘한국양계축협지부’가 기업별 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한 사건을 심리 중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도 산별노조가 기업별노조로 변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사건 지회가 ‘독립성’을 갖췄는지에 따라 다른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일선 재판부에서는 상신브레이크의 경우 조직형태 변경이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렸지만 한국양계축협지부 사건에서는 지회가 별개의 노조로 독립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