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폭락으로 중앙아시아와 남미 등 주요 산유국에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이 ‘저유가 발 디폴트(채무불이행)’ 사전 차단을 위한 공조에 나섰다.
IMF와 WB는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 구제금융과 관련해 실사단을 파견했다고 27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실사단은 40억 달러(약 4조8120억원)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과 관련해 아제르바이잔 당국과 논의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개발은행(EBRD)과 아시아개발은행(ADB) 등도 수일 안에 아제르바이잔에 대표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이처럼 주요 국제금융기구들이 잇달아 아제르바이잔에 실사단을 파견하는 등 이 나라 상황에 주시하는 이유는 저유가로 인한 산유국들의 연쇄 디폴트 사태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목적에서다. 아제르바이잔이 이번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다면 유가 폭락세에 따른 산유국의 첫 구제금융 사례인 동시에 연쇄 구제금융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오일머니에 의존한다. 국가 전체 수출에서 원유와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95%에 달한다. 그러나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아제르바이잔 통화 ‘마나트’ 가치는 급락하고 현지에서는 시위가 잇따라 정정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인한 마나트화 가치 하락은 통제 불능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아제르바이잔 중앙은행은 1년 만에 외환보유고 절반 이상을 환율방어에 쏟아붓다가 지난해 12월 말에 결국 달러 고정환율제(페그제)를 포기했다. 달러 대비 마나트화 가치는 지난해 12월 이후 35% 추락했다. 급기야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지난주부터 해외로 송금되는 외화에 20% 세금을 부과하는 초강력 자본통제 방안을 내놨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아제르바이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중앙아시아는 물론 남미와 아프리카 등 재정의 상당 부분을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이에 IMF와 WB는 브라질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산유국들의 디폴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해당 국가 경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연초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새해 첫 방문국으로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를 택해 저유가에 대한 리스크를 경고한 것도 산유국 디폴트 우려에 따른 것이다.
WB는 전날 보고서를 통해 올해 국제유가 전망치를 배럴당 52달러에서 37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또한 원자재 생산국과 상품시장이 전반적으로 종전의 예상보다 더 큰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등 신흥국의 경제 성장 둔화로 수급 문제가 예상보다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편, IMF와 WB 지원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로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구제금융을 받지 않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지난해 외환보유고의 절반이 증발했지만, 부채가 적고 국부펀드의 자산규모가 국내총생산(GDP) 60%가 넘는 347억 규모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국제유가는 사우디와 러시아 감산 공조 소식도 전해지면서 이틀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