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경제 톡] 스타벅스 다이어리, ‘덤의 역습’에 열광하는 이유

입력 2015-12-07 15:36수정 2015-12-0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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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스타벅스 홈페이지)

혹시 스타벅스 다이어리 받으셨습니까? 열 일곱 잔의 음료를 마셔야 주는 그 다이어리 말입니다. 제 옆자리 후배는 지난달 득템해서 벌써 기념일 체크를 마무리했고요. 회사서 1km나 떨어진 스타벅스를 줄곧 다니던 선배도 지난주 겟(Get) 했습니다. 재작년 프로모션의 고비를 넘지 못한 저는 진작 포기하고 ‘프리퀀시(스탬프) 품앗이'를 하고 있죠.

인기 검색어에서 이따금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오르고, 올해부터 엔젤리너스, 할리스, 투썸플레이스도 똑같은 마케팅을 시작했다는 걸 보니 ‘스벅 플래너 대란’이 맞긴 맞나 봅니다.

스타벅스 다이어리, 얼마나 하는지 따져볼까요?

다이어리를 받으려면 스타벅스가 지정한 프로모션 음료 3잔과 보통 음료 14잔을 마신 스티커를 모아야 하는데요. 올해 프로모션 음료는 ‘크리스마스 바닐라 티 라떼’, ‘헤이즐넛 크런치 모카’, ‘토피넛 라떼’입니다. 가장 작은 사이즈 숏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이 음료들의 가격은 4800~5100원입니다. 나머지 14잔은 자신이 원하는 음료를 마셔도 됩니다. 스타벅스에서 가장 싼 ‘오늘의 커피’(3300원)로 계산하면 4만 6200원이 나오네요.

(프로모션 3 x 4800원) + (오늘의 커피 14 x 3300원) = 6만 600원

최저가로 계산해서 이 정도입니다. 만약 사이즈를 벤티(1500원 추가)로 업그레이드하거나 자바 칩 프라푸치노(톨, 6100원)와 같은 제조음료를 마신다면 여기서 4만~5만원을 더 줘야 하죠.

다이어리계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프랭클린 플래너’(천연가죽 몰비도 PO, G마켓 판매가 6만3220원)보다 비싸고요. 스타벅스 다이어리와 같은 제조사인 ‘몰스킨’(2만 3730원)의 제품과는 3~5배 차이가 납니다.

이쯤 되면 커피를 마시고 다이어리를 받는 건지, 다이어리를 얻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건지 헷갈립니다.

물론 다이어리는 개별 구매도 가능합니다. 2만7500원이면 살 수 있죠.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17잔의 압박’에도 스타벅스 다이어리에 열광하는 걸까요? 요상한 미션카드에 실망하고, 정작 일정 체크는 스마트폰으로 하면서 말이죠.

▲지난해 봄 한정판으로 판매된 뉴발란스의 '999 체리블라썸'(출처=뉴발란스 홈페이지)

이유는 간단합니다. 희소성 때문입니다. 이벤트로는 모든 색 다이어리를 얻을 수 있지만 돈 주고 살 수 있는 건 레드/블랙만 가능하죠.

이를 경영학에선 ‘한정판 마케팅’(Limited Marketing)이라고 부릅니다. ‘지금이 아니면 살수 없다’는 소비 심리와 ‘적은 돈으로 남들과는 다른 것을 소유한다’는 차별 욕구를 동시에 만족하게 하는 거죠.

결국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덤 + 한정판 = 대박’ 공식의 결정체인 셈이죠.

이 같은 심리를 이용해 일부 사람들은 한정판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지난해 스타벅스는 ‘스탬프 투어’를 벌였는데요. 전국 주요 매장의 도장을 다 모으면 선물을 주는 이벤트였습니다.

학교 다니고, 회사생활 하면서 제주, 거제, 경주에 흩어져 있는 스탬프 매장을 전부 가보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도장알바가 생겼습니다. 이들은 13만원에 완성본을 팔기도 하고요. 도장 하나에 7000원을 받고 대신 찍어주기도 합니다. 물론 왕복 택배비와 커피값은 별도고요.

2012년 ‘디아블로 3 한정판 패키지’, 지난해 ‘뉴발란스 999 체리블라썸’, 지난달 ‘애플펜슬’과 ‘발망 X H&M 콜라보’도 리셀러들의 짭짤한 재테크 수단이었죠.

수익률(?)이 좋으냐고요? 사실 썩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스타벅스 스탬프 투어를 완성하면 앞치마, 머그컵, 머들러(커피 젓는 막대), 코스터(찻잔 받침), 톨 사이즈 음료 교환권(5매), 플래너 1권을 받는데요. 비매품인 앞치마를 제외하고 별도로 구매해도 7만원 정도면 충분합니다.

빗속에서도 줄을 서게했던 뉴발의 ‘체리블라썸’은 해외 직구 사이트에 365일 올라있고요. 노숙 대란까지 일었던 ‘발망 X H&M 콜라보’는 중고나라에서 원가 이하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3일 서울 명동 ‘H&M’ 명동눈스퀘어점 앞에 ‘발망XH&M’의 콜라보 상품을 구매하려고 시민들이 노숙을 하고 있다.

“왜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갖고 싶은 건데?” 스타벅스 프리퀀시를 모으고 있는 동료에게 물어봤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자.기.만.족’ 네 글자입니다. 공감이 갑니다.

도장알바와 리셀러 때문에 그 의미가 퇴식되긴 했지만 사람들이 스타벅스 다이어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만큼 ‘만족할만한 꺼리’가 없어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경기침체기에 오히려 한정판 마케팅이 더 잘 먹히는 것처럼요. 이런 점에서 이들에게 ‘된장녀’, ‘별거지’란 욕은 과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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