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의 그런데] 이태원살인사건...제2의 '살인의 추억' 되나

입력 2015-09-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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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1997년 4월 3일 밤 10시.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던 대학생 조중필(당시 23세) 씨는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근처 햄버거 가게의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 이윽고 누군가 화장실로 들어오는 듯하더니 뒤에서 갑자기 조씨의 목을 칼로 찌르기 시작했습니다. 잠시후 조씨는 왼쪽 목 부위 네곳, 오른쪽 목 부위 세곳, 가슴 부위 두곳 등 무려 9곳을 흉기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채 발견됐습니다. 신고를 접수한 119가 출동했으나 조씨는 이미 숨진 뒤였습니다.

"그저 재미로 그랬다."

이태원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10대 미성년자 미국인 패터슨과 동갑내기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 당시 이들의 나이 고작 18세였습니다. 조씨와 원한관계도, 시비가 붙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황상 용의자가 버젓이 두 명이나 있었지만 정작 이 사건의 '범인'은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태원 살인사건은 어쩌다 장기간 의문으로 남는 사건으로 전락하게 됐을까요?

(출처=SBS 그것이 알고싶다)

사건이 복잡해진 이유는 많지만 크게 두 개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용의자가 '미국 국적'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용의자와 주변인 대부분이 미국인이었던 탓에 '언어 장벽'이 있어 심문하는데 어려움이 뒤따랐죠. 특히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으로 인해 주한 미군 아들인 패터슨 등 용의자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인 공권력 개입이 어려워 초동수사가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두 번째, 수사당국의 엇갈린 판단과 안이함이 유족의 억울함을 키웠다는 지적입니다. 두 용의자는 서로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수사기관 역시 진범이 누구인지를 놓고도 서로 판단이 엇갈렸습니다. 당시 사건을 조사한 형사와 미국범죄수사대(CID)는 아더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담당 검사는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확신했죠.

결국 용의자 리에게는 살인혐의가, 패터슨에게는 증거인멸과 불법무기 소지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그러나 결국 리는 증거불충분으로 1998년 9월 무죄판결을 받아 풀려났고요. 1년6월 단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패터슨 역시 같은해 8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죠. 둘 중 한명은 유죄가 분명한데도 두 명 모두에게 '유죄같은' 무죄가 내려진 셈이죠.

(출처=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리가 무죄로 석방되자 조씨의 유가족은 패터슨을 살인혐의로 고소했는데요. 검찰은 패터슨을 출국 금지하고 수사해오다 1999년 8월 인사이동 과정에서 사흘 동안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이 틈을 타 패터슨은 미국으로 도주했고, 수사는 중단됐죠. 패터슨의 도주 후 검찰은 기소중지 조치를 취하는 데 그치는 등 소극적 태도를 보이다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 사건'의 개봉으로 여론이 들끓자 재수사에 착수, 뒤늦게 범죄인 인도 청구했고요. 2011년에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18세였던 패터슨이 도주한 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국내로 송환됐지만 '이태원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고 단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건이 발생한지 18년이 지난 만큼 관련 증언이나 증거가 불충분해 혐의를 입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죠. 특히 패터슨과 리가 살인의 공범일 가능성도 있지만 이미 리가 살인죄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아 더 이상 처벌할 수 없다는 점도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태원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아더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주한 지 16년 만에 23일 한국으로 송환됐다. (뉴시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제 2의 이태원 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관련 범죄는 매년 증가하지만 이를 처리하는 외사 경찰 인력 부족은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고, '불평등 조약'이라는 비판에도 SOFA 개정은 여전히 요구에만 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지난 6월 이태원 한 주점에서 한국인을 폭행해 숨지게 한 미국인에게 징역 4년형을 내리는 등 외국인에 대한 재판부의 '지나친 너그러움'도 최근 논란이 되고 있죠.

어쨌든 어렵게 패터슨을 송환한 만큼 '이태원 살인사건'이 범인은 없고 피해자만 남은 제2의 '살인의 추억'이 되질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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