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의 그런데] 취준생에게 추석이란?

입력 2015-09-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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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이미지투데이)

"자소서 쓰려고 (고향) 안 내려가려고 했거든. 근데 내가 말 꺼내기도 전에 엄마가 친척들 들락날락하고 괜히 시골 왔다 갔다 하는데 시간낭비하지 말라면서 오지 말라고 하더라고. 죄송스러우면서도 뭔가 섭섭한 거 있지"

영문학을 전공한 A(28)씨, 하반기 공채시즌 주요 기업의 입사지원 마감이 9월 말 10월 초로 몰리면서 요즘 하루에 최소 2~3개의 자소서(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습니다. 고향이 부산인 A씨는 올해 추석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졸업한 지 이제 2년차.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것도 이번 추석까지 4번째입니다. 자소서도 써야 하고, 친척들 보기도 껄끄럽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번 추석에는 어머니마저도 "명절에 굳이 안 와도 된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엄마도 취업 못한 내가 부끄러운가' 하는 마음에 울컥합니다.

서울이 고향인 취준생은 이마저도 부럽다고 말합니다. 공시생 (공무원시험 준비생) B(30)씨는 서울이 고향인터라 다른 지방 출신 취준생처럼 친척들을 피해 있을 곳이 없습니다. 지난 설에는 취준생인 덕에(?) 고모부와 할머니께 세뱃돈도 받았습니다. 고마움과 죄송스러운 마음이 교차하면서 '안 받겠다'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15만원을 받았고 토익시험 비용으로 썼습니다.

민족 대명절이라는 추석과 설. 취준생에게는 '피하고 싶은 날'이죠.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11일~15일까지 358명을 대상으로 '올 추석, 나 혼자 취업 준비한다' 라는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한 취준생 중 73%가 "연휴 기간 중 취업 준비를 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출처=tvN 오늘부터 출근 페이스북)

이들이 연휴에도 취업 준비하겠다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취업이 급해서(23%)"가 가장 많았고 "연휴기간에도 서류전형 등 기업들의 공채 일정이 진행되기 때문(20%)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번 주 추석연휴를 앞두고 취준생은 계속 몰려드는 서류 마감일정에 눈코뜰새가 없습니다. 당장 21일은 아모레퍼시픽 GS리테일의 입사지원서 마감이고 22일에는 두산과 넥슨, 24일에는 기업은행의 서류전형 마감일이죠. 추석 연휴가 끝나면 CJ, 한진, 이랜드리테일 등의 입사원서 마감일로 이어집니다.

명절에 가족과 함께 보내지 않고 '혼자 있는 것'을 택한 취준생들이 가는 곳은 어디일까요. 연휴 기간 취업준비를 하는 곳으로 54%의 응답자가 '집'을 택했는데요. 어머니가 해두고 가신 명절 음식을 먹으면서 묵묵히 자소서를 쓰겠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 밖에도 도서관(14%)이나 카페(12%)에서 취업준비를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인·적성 검사 등 추석에만 열리는 취업준비 관련 단기 특강을 듣는 학생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추석 연휴에만 '반짝 스터디'를 찾는 취준생들도 많습니다. 이른바 '추석 스터디'. 스펙 따지는 일반 취업스터디와 달리 개인정보나 스펙과 상관없이 누구든 시간 맞는 사람끼리 '추석기간에만' 모여 공부하는 것이죠.

(출처=tvN SNL)

문제는 이러한 치열한 취업 준비가 취준생의 자신감으로 연결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7월 잡코리아 조사결과 취준생 10명중 4명은 "현실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 입사가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는데요. 이유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스펙과 높은 경쟁률이었습니다.

서류전형 통과도 쉽지 않은 채용 시장의 현실. 취준생 사이에서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대인관계'를 포기한 '5포 세대'를 넘어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7포 세대'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는데요. 명절도 반납한 청춘들, 무엇을 더 포기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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