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그래서 다시 물어본다. ‘안정적이고 편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고. 자극이 없을 수 있다는 말이고, 그래서 변화를 읽고 그에 상응하는 자기 혁신을 그만큼 덜 할 수 있다는 말이라고. 다시 같은 답이 돌아온다. ‘그러면 어때요. 편하게 오래, 또 힘도 좀 써가며 살 수 있잖아요.’
9급이나 7급 준비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5급 준비생들에게서도 비슷한 경향이 발견된다. ‘안정적이어서,’ 또 ‘꿇리지 않고 편히 살 수 있고 때로 힘도 좀 쓸 수 있어’ 그 길을 가고 싶다고 한다. 입에 발린 소리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거나 ‘열심히 뛰어 보고 싶어서’라는 말을 한 번쯤 듣고 싶지만 그런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자. 행여 열심히 뛰고 싶은 공무원이 있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수많은 법령과 지침, 상급기관이나 상급자의 입장과 ‘뜻’, 그리고 민원인이나 시민단체, 언론 등이 모두 건드리기만 하면 터지는 지뢰가 되어 공무원을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고위공직자를 보면 ‘조심하라’는 말이 인사말이 되었다. 지뢰밭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니 그렇게 하라는 말이다.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일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사전에 알아도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월호 참사 때만 해도 그렇다. 기록사진 찍자고 했다가 목이 날아가고, 라면 한 그릇을 먹다가 장관이 옷을 벗었다. 이들이 잘했다는 말이 아니다. 공직을 향한 민심이나 환경이 이들의 30년 공직생활이 어떠했는지를 한번 물어 보지고 않고 목을 날릴 만큼 험하다는 이야기이다.
자연스러운 결과일까? 공직사회의 자부심과 자긍심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난 세월 한때 지나치게 당당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에, 시장권력과 정치권력에 주눅이 든 채 여론이나 살피는 모습이 딱하기 그지없다. 뭐든 지시가 있어야 움직이고, 지시가 있어도 책임을 피할 길부터 먼저 찾는 모습,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자괴감인들 느끼지 않을 수 있겠나.
변화가 심한 세상이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갈등과 대립도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 시장이 커지고 시민사회의 권리의식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공직사회는 더 적극적이어야 하고 더 능동적으로 뛰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어찌할 것인가? 현실은 그 반대이다. 그 안에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가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그래서 그런지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위공직자의 연봉을 깎자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1억원 이상이 되는 장관·차관 등의 연봉을 8000만원 이하로 낮추자는 내용이다. 그 정도가 되어야 국민 눈높이에서 국정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온몸에 힘이 주~욱 빠진다. 비판하고 따질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다. 그저 허탈해진다. 깎지 말라는 게 아니다. 깎아야 할 정도로 많이 받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들을 이야기할 때, 이건 아니다.
물어보자. 고위공직자의 연봉이 그렇게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높은 상태인가? 그래서 다른 문제를 다 제쳐 두고 이 문제부터 다루어야 하나? 국회의원은 빼고 이야기하자는 것은 또 뭔가? 국회의원은 정치활동과 정책 작업 등에 돈을 많이 쓴다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또 있다. 보수가 높아 국민의 삶이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데, 정말 보수만 낮추면 그렇게 되나? 원래 부자 출신이거나 배우자가 돈을 잘 버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또 고위공직자들은 명예를 가지기 때문에 보수를 적게 받아도 된다는데, 정말 그런가? 국회의원으로서 먼저 대답해 보라. 근래 그런 명예를 준 적이 있던가?
이러지 말자. 이런 시비조의 질문을 하게 만들지 말자. 무엇이 공직자와 공직사회를 움직이게 만들 것인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우리 다 같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