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업 실적격차 커지면 고용·투자에 부정적”
상위 기업 30곳이 국내 주요 기업들의 전체 영업이익을 절반 넘게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의 수익성이 부진한 가운데 기업 간 실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는 고용과 설비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이 30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1만5914개 기업의 영업이익 가운데 51.7%가 영업이익 상위 30개 기업에서 창출됐다. 이 비중은 2009년 40.6%에서 4년 만에 11.1%포인트 높아졌다.
같은 기간 수출이 호조를 보인 전기전자(13.8→28.2%), 자동차업종(6.2→11.5%)의 영업이익 점유율은 크게 증가하고 조선(5.4→-0.3%), 철강(6.4→5.4%), 화학(12.3→8.8%), 부동산·임대·건설 업종(8.6→1.8%) 비중은 하락했다.
한은은 “기업들의 실적 격차가 커질 경우 고용, 설비투자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면서 “영업 실적 상위 기업 대부분이 전기전자, 운송장비 등 자본집약적 산업이라 고용계수가 낮다”고 설명했다.
또한 실적 상위 기업들은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 글로벌 경쟁 심화 등으로 연구개발(R&D) 투자에 집중하는 한편 설비확장은 비용절감 등을 위해 국내보다 해외직접투자를 활용하는 모습이라고 한은은 지적했다.
기업들의 실적 양극화는 금융기관의 자금중개 기능이 낮아지고, 대내외 충격이 발생했을 때 재무건전성이 나빠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은은 “실적 상위 기업을 중심으로 단기금융자산 보유가 증가하면서 금융기관 수신이 단기화됐다”고 밝혔다.
한은이 또 기업 영업환경 악화를 가정해 재무건전성 민감도를 테스트한 결과 재무건전성이 악화한 정도가 2009년에 비해 지난해 더 높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위험부채 비중으로 상위 10위에 오른 ‘위험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했더니, 올해 8월 말 현재 이들에 대한 금융권의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은 44조8000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63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위험부채가 많은 상위 10개 기업집단을 뽑아내 테스트한 결과다. 이중 국내 은행의 익스포저는 34조7000억원, 비은행 금융회사의 익스포저는 10조1000억원이었다.
한은은 10개 위험 기업집단 명단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10개 위험 기업집단 중 개별 집단이 단독으로 부실해지면 금융권 전체 예상손실은 최소 6000억원에서 최대 6조4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