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公 22조 부채·가스公 주주권·12만명 처우 등 인력통합 난제

공공기관 109개를 줄이는 정부의 기능개혁이 통합 비용과 이해관계 충돌을 풀어야 할 시험대에 올랐다. 법인을 합쳐도 부채가 사라지거나 직원 처우가 같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 문턱을 넘어 통합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본사와 인력을 어디에 둘지까지 정해야 개편이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비용과 갈등을 줄일 해법을 내놓지 못하면 효율화를 위한 통폐합이 재정 부담과 지역 간 충돌을 키우는 역설에 빠질 수 있다.
6일 정부 및 공기업 등에 따르면 공공기관 기능개혁 방안은 통폐합 등을 통해 기관 수를 524개에서 415개로 줄이는 내용이 골자다. 이는 지정 공공기관뿐 아니라 지정 요건에 해당하는 미지정 기관 등을 포함한 수치다. 발전 5사와 항만공사 4곳을 각각 하나로 합치고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도 통합하는 대규모 개편이다.
그러나 기관 수 감축 목표와 달리 부채 승계와 통합본사 입지, 기관별 임금·직급 조정 기준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다. 개편의 실익과 이해관계자별 부담을 가를 핵심 결정이 후속 이행계획에 남겨진 셈이다.
첫 관문은 국회다. 정부는 통폐합 대상 기관의 80% 이상이 법률 제·개정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기관별 설립법뿐 아니라 자산과 권리·의무 승계, 인허가와 조세 문제를 처리할 근거도 마련해야 한다. 지역구 공공기관이 통폐합되는 국회의원들과 지방정부의 반발도 변수다.
발전 5사는 현행법으로도 합병할 수 있지만, 정부는 2027년 10월 ‘한국발전’(가칭) 출범을 목표로 특별법을 추진한다. 인허가와 고용계약 승계, 합병절차 간소화 등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해서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법이 처리되지 않으면 출범 일정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주무부처별로 필요한 법 개정과 추진 일정을 담은 기관별 로드맵을 마련할 것”이라며 “부채 처리와 조직·인력 배치 등 세부 방안은 이해관계자 협의를 거쳐 구체화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무거운 계산서는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통합이다. 알리오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2025년 말 자산 19조4442억원, 부채 21조9733억원으로 부채가 자산을 약 2조5300억원 웃도는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가스공사도 같은 시점 연결 기준 부채가 약 42조8300억원, 부채비율이 396.6%다. 민수용 원료비 미수금도 13조8649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석유공사 부실자산을 관리할 별도 자회사 설립을 검토하고 있지만 분리할 자산과 채무, 정부의 자본 보강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가스공사는 상장사인 만큼 합병가액과 신주 배정, 상장 유지 여부, 주식매수청구권 등 주주 보호 문제도 풀어야 한다.
부실 정리 과정에서 자원개발 역량을 얼마나 유지할지도 쟁점이다. 정부는 통합공사에 석유비축과 제한된 탐사개발 기능을 넘기고 공급망 관리에 무게를 둘 방침이다. 탐사개발을 전면 중단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지만 학계에서는 투자 실패에 대한 대응이 탐사 기술과 전문인력의 약화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합본사 소재지를 둘러싼 지역 갈등도 불가피하다. 진주·보령·태안·부산·울산에 흩어진 발전 5사 본사를 대신해 약 1800명 규모의 새 본사가 필요하지만, 위치는 정해지지 않았다. 기존 본사 인력 약 2400명 가운데 약 600명은 3~4개 지역재생에너지본부에 배치할 계획이다.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4개 항만공사도 통합 뒤 지역지사로 개편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지역에서는 정책·기획·투자 결정권이 통합공사로 집중돼 항만별 사업이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존 청사 활용뿐 아니라 지역지사에 남길 권한과 인력도 통합계획에 담아야 하는 이유다.
고용승계 이후의 노무통합도 숙제다. 정부가 파악한 전체 통폐합 대상 기관의 정규직 인력은 약 12만 명이다. 정부는 임원을 제외한 직원의 고용과 정원을 유지하고 처우가 낮아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기관마다 다른 직급·승진·임금·복리후생·단체협약을 조정할 구체적인 통합 기준은 아직 제시하지 않았다. 사업비로 인건비를 받는 기간제 계약직은 별도 처리 대상이다.
발전 5사는 처우 조정을 넘어 에너지 전환에 따른 인력 재배치까지 풀어야 한다. 2026년 6월 기준 보유한 석탄발전 설비 3만2059MW가 통합과 동시에 폐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발전소별 폐지·전환 일정에 맞춰 대체 사업과 인력 재교육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결국 후속 이행계획에는 법인을 합치는 일정뿐 아니라 통합 이후의 운영 방식까지 담겨야 한다. 부채와 인건비, 이전 비용을 감안해 실제 절감 효과를 따지고 지역 서비스와 전문인력을 유지할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기관 수 감축이 공공부문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이번 개편의 성패는 기관 감축 숫자가 아니라 통합 비용의 부담과 지역별 권한·인력 배분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달렸다”며 “기관별 부채 승계와 직급·임금 통합 원칙을 제시하고 재정 투입 규모와 중장기 절감 효과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