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농업연구에 심은 AI⋯신품종ㆍ데이터 농정 키운다 [CEO 탐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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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서 답 찾는’ 이승돈 농촌진흥청장

취임 1년간 농가 101차례 방문
현장의견 3109건 중 2469건 반영
연구성과, 수익성 연결 실증 나서
‘AI 새싹이’로 연구ㆍ보급시간 단축
농림위성 활용 재해 선대응 추진

품종과 재배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기관이자 그 성과를 전국 농가에 확산하는 기술정책기관. 농촌진흥청이 지닌 두 역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 이승돈 청장이다. 1995년 농업연구사로 공직에 들어와 31년간 농업 연구와 정책, 조직 운영을 두루 경험했다.

지난해 8월 청장에 오른 뒤 1년간 농가와 농산업 현장을 찾은 횟수는 101차례다. 이 청장이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연구 성과와 농업인의 체감 사이에 남아 있는 거리였다. 논문과 특허, 기술개발 건수가 늘어도 기술을 도입한 농가의 생산비가 얼마나 줄고 소득이 얼마나 늘었는지 보여주지 못하면 충분한 성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취임 2년 차에는 연구실에서 나온 기술을 농가의 손익과 안전으로 연결하고, AI로 연구·보급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국내 첫 농림위성으로 데이터 농정의 기반을 다지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

◇ 직원 1000명 이름 아는 ‘31년 농진청맨’

▲이승돈 농촌진흥청장이 7월 23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안군을 찾아 여름철 농업인 안전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날 이 청장은 농업인들께 온열질환 안전 수칙을 안내하고 예방 용품을 전달했다. (사진제공=농촌진흥청)

1967년 제주 서귀포시의 감귤 농가에서 자란 이 청장은 서울대 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식물병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농업과학원 유해생물과장과 기획조정과장, 농진청 연구정책과장, 국립농업과학원장을 거쳐 7년 만의 농진청 내부 출신 수장이 됐다.

취임 직후 첫 공식 행선지도 집무실이 아닌 농가였다. 공식 취임식을 하루 앞둔 지난해 8월 17일 전남 담양의 친환경 토마토 농가를 찾아 토마토뿔나방 방제 상황을 살폈다. 식물병리학을 전공한 자신의 전문성과 ‘현장에서 답을 찾는다’는 업무 방식을 함께 보여준 행보였다.

오랜 내부 경험은 조직 운영에서도 드러난다. 이 청장은 농진청 공무원 1900명 가운데 1000명의 이름과 얼굴을 안다고 말한다. 취임 후 고위공무원단 토론회와 직원·팀장·파견공무원 간담회 등 11차례에 걸쳐 453명과 직접 머리를 맞댔다. 현장 방문 때 과도한 의전을 줄이고 불필요한 관행을 버리는 한편 비효율적인 절차를 개선하는 ‘비생산적 일버리기’ 3대 공약도 추진했다.

조직에 제시한 기준은 ‘실용성·소통·협업’이다. 연구와 현장 실증을 동시에 추진해 기술 보급 기간을 줄이기 위한 ‘연구개발-기술보급 공동협의체’를 식량·원예·축산·농업인 안전·스마트농업 등 9개 분과로 꾸렸다. 이 청장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청장으로서 조직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연구진이 오롯이 농업·농촌 현안 해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 현장 목소리 ‘건의에서 정책까지’…농작업 안전망 확대

▲이승돈 농촌진흥청장이 2025년 9월 22일 22일 전북 김제시 논콩 생산단지에서 생육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농촌진흥청)

101차례의 현장 방문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도록 4월에는 현장의견 통합관리시스템 ‘현장ON’을 가동했다. 농가 방문과 간담회, 전화 상담 등으로 들어온 의견을 한곳에 모아 담당 부서의 검토와 조치, 결과 회신까지 추적하는 시스템이다. 7월까지 접수한 3109건 가운데 2469건을 연구·사업·제도 개선 등에 반영했고, 558건은 검토하거나 중장기 과제로 관리하고 있다.

벼 깨씨무늬병 피해를 줄여달라는 요구에는 토양관리 기술 보급과 저항성 품종 현장 실증으로 답했다. 가축분뇨 액비의 활용 기준을 개선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자 TF를 꾸리고 가축분뇨 발효액의 질소·인산·칼리 합산 기준을 0.3% 이상에서 0.2% 이상으로 낮추는 비료 공정규격 개정으로 연결했다.

연구 성과를 농가의 손익으로 확인하는 작업도 시작했다. 지난해 시범 운영한 AI 농가경영컨설팅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대상 농가의 10a당 농업소득이 평균 162만원(25.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컨설팅 대상을 1000농가로 확대하고 향후 3년간 농가별 진단·처방 사례 3000건을 쌓아 AI 처방의 정확도를 높일 계획이다.

농업인의 생명과 안전도 취임 1년의 주요 축이다. 농작업 현장의 위험·유해요인을 찾아 개선하는 농작업안전관리자는 지난해 20개 시군 40명에서 올해 44개 시군 88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안전 컨설팅을 받은 농가의 재해율은 1.74%로, 2022~2024년 농업인안전보험 가입 농가 평균 5.63%의 약 3분의 1이었다. 내년부터는 안전관리자를 전국 156개 시군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는 91개 시군에서 온열질환 예방요원 1149명을 선발해 고령농 등 10만농가를 살피고 있다.

◇ AI에 20년 연구 심고, 농림위성으로 전국 농지 살핀다

▲이승돈 농촌진흥청장이 2025년 11월 19일 정부세종청사 농식품부 기자실에서 '더 커가는 농업, 함께 행복한 농촌'을 실현하기 위한 '농업과학기술 AI 융합 전략'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농촌진흥청)

취임 2년 차의 핵심 동력은 AI다. 지난해 11월 ‘농업과학기술 AI 융합 전략’을 내놓은 데 이어 9월에는 농업 전문 AI 에이전트 ‘AI 이삭이 2.0’을 정식 출시한다. 농업기술 문서 1만5000권(55만 페이지)과 병해충 이미지 8694개를 바탕으로 병해충을 진단하고 비료 사용량을 추천하며 음성으로 영농일지도 작성한다. AI 이삭이는 농진청 공식 자료만 참조하고, 기술위원 30명으로 꾸린 품질보증팀은 질문과 답변을 매일 검토해 오류 가능성을 낮출 계획이다.

내부 연구자를 위한 ‘AI 새싹이’에는 20년간 축적한 연구과제 계획서와 보고서 3만건을 등록했다. 현장 수요 분석과 기존 연구 검색, 가설 수립을 지원해 연구개발부터 농가 보급까지 걸리는 시간을 30% 이상 줄이는 것이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AI·로봇을 활용해 농작업의 90%를 무인·자율화하고 농약 사용을 50% 줄이며 신품종 개발 기간은 10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K-농업문샷’에 도전한다.

7월 7일 발사에 성공한 국내 첫 농림위성도 데이터 농정의 기반이 된다. 연말까지 영상 검·보정을 마친 뒤 전국을 3일 주기로 촬영해 작물 재배면적과 생육, 농지 변화를 관측할 예정이다. 2027년부터 위성영상과 작물의 생육 상태를 보여주는 식생지수를 공개하고 2028년부터는 농작물 관측·농지 변화·재해 위험 정보를 단계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농업인이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경작하는 농지의 생육 상태를 확인하는 서비스는 2027년 청년농을 대상으로 먼저 시험한다.

다만 AI 이삭이 2.0은 아직 출시 전이다. AI 새싹이로 연구개발부터 보급까지 걸리는 시간을 30% 줄이고 농림위성을 농산물 수급·농업재해 대응에 활용하는 구상도 아직 목표 단계다. 이 청장이 취임 1년간 가장 아쉬웠던 점으로 ‘농업인이 체감하는 연구 성과 부족’을 꼽은 이유다.

그는 “농업인 여러분이 현장에서 겪는 여러 고충을 최전선에서 함께 해결하는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라며 “AI와 로봇, 기후적응형 품종 등 농진청이 가진 모든 기술 역량을 동원해 농업인이 더 편하게 농사짓고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국민께 안전한 먹거리와 안정적인 식량을 제공하는 국가 농업과학기술기관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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