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불안에 정비사업 긴장

건설공사비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중동 전쟁이 다시 격화하면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의 공사비 인상 압력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무력 충돌을 이어가며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변동성이 커지면서 이미 역대 최고 수준까지 오른 공사비가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5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37.67로 역대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전년 동월보다 5.07% 상승한 것으로 지난해 9월 이후 9개월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건축용 목제품(9.54%)과 기타 비금속광물(8.14%), 산업용 가스(4.86%), 전선 및 케이블(3.77%) 등 주요 건설자재 가격이 일제히 오르면서 공사비 상승을 이끌었다. 특히 전선·케이블과 철강, 콘크리트 제품 등 현장에서 사용량이 많은 자재의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
이미 인건비와 자재비, 금융비용 상승으로 공사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는 또 다른 변수로 꼽힌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철강과 시멘트, 아스팔트, 레미콘 등 에너지 가격의 영향을 크게 받는 건설자재의 생산·운송 비용도 함께 상승해 정비사업 공사비를 다시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정비사업장에서는 물가 상승을 반영한 공사비 증액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4월 서울 송파구 마천4구역 재개발 조합에 기존 3.3㎡당 584만원이던 공사비를 959만원으로 75.6% 인상해 달라고 요청했다. 2021년 공사비를 산정한 이후 물가 상승과 설계 변경 등으로 사업비 부담이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도 공사비가 크게 늘어난 사례다. 총공사비는 지난해 5800억원에서 8366억원으로 2566억원 증가했다. 설계 및 특화설계 변경, 공사 중단과 공기 연장에 따른 손실, 물가 변동분 등이 협상 과정에서 복합적으로 반영됐다.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도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공사비 증액 검증 요청은 2023년 30건에서 지난해 52건으로 증가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업계는 중동발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공사비 증액 협상도 더욱 잦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대부분 조합과 협의를 통해 공사비를 조정하지만 원자재 가격 급등이 반복되면 조합과 시공사 간 이견도 커질 수 있다"며 "공사비를 둘러싼 분쟁이 지금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3.3㎡당 공사비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3.3㎡당 500만원 안팎이던 공사비는 최근 1000만원을 웃도는 사업장이 잇따르고 있다. 여의도 목화아파트는 3.3㎡당 공사비가 약 1370만원으로 책정돼 정비사업장 가운데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압구정과 성수, 여의도 등 주요 재건축 사업지에서도 1100만~1200만원대 공사비가 보편화하는 추세다.
본지 자문위원인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사비는 유가뿐 아니라 환율과 물가 등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며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해 국제유가와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경우 공사비 상승 압력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도 물가가 꾸준히 오르는 상황인 데다 공사비 부담을 낮출 만한 뚜렷한 요인이 보이지 않는 만큼 하반기에도 공사비 인상 압력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