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거 끝에 22년 만에 보수 시장 탄생
선관위 “이번 사태는 재선거 사유 해당 안 돼”

6ㆍ3 지방선거일에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과거 독일 사례가 재조명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근거로 재투표 가능성에 대한 주장이 나오지만 이번 사태와 다른 만큼 불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4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2021년 9월 독일 연방 총선이 치러지던 날 베를린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동나면서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섰다. 일부는 투표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당시 베를린에서는 연방 총선과 주의회 선거, 자치구 의회 선거, 주민투표가 같은 날 실시됐다. 여기에 베를린 마라톤까지 겹치면서 주요 도로가 통제됐고 선거 운영 전반에 차질이 빚어졌다.
투표 당일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선관위가 투표 시간과 투표용지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면서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가 부족해 운영이 일시 중단된 뒤 재개됐다. 이로 인해 법정 투표 종료 시각인 오후 6시 이후에도 투표가 이어졌고 일부 유권자는 출구 조사 결과가 공개된 이후 투표하게 됐다.
다른 선거구에 배부돼야 할 투표용지가 잘못 전달되는 일도 벌어졌다. 일부 투표소는 부족한 투표용지를 복사해 배부하기도 했는데, 이 투표용지에 행사된 표는 모두 무효 처리됐다.

결국 선거 결과는 법원으로 향했다. 베를린 선거관리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사임했고 당시 야당이던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을 중심으로 이의제기가 이어졌다. 베를린주 헌법재판소는 연방 총선 이듬해인 2022년 11월 주의회와 자치구 의회 선거 전체를 무효로 판단하고 재선거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 규모를 파악할 수 없고 적은 표 차이로도 의석 배분이 달라질 수 있었으며 출구 조사 결과 발표 이후에도 투표가 진행된 점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연방 총선 역시 일부 무효 판정을 받았다.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베를린 전체 2256개 선거구 가운데 455개 선거구의 총선 결과를 무효로 판단하고 재선거를 명령했다.
재선거는 실제 정치 지형 변화로 이어졌다. 2023년 2월 치러진 주의회 재선거 결과 의석 지형이 뒤바뀌면서 CDU 소속 카이 베그너가 베를린 시장에 취임했다. 이로 인해 사민당(SPD) 소속 프란치스카 기파이 시장은 약 1년 4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베를린에서 보수 성향 시장이 탄생한 것은 22년 만이었다. 이듬해인 2024년 2월 치러진 연방 총선 재선거에서는 연방하원 의석 1석이 야권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다만 독일 사례를 이번 국내 사태와 동일 선상에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지연되고 마감 시각 이후에도 투표가 진행됐지만 독일에서는 투표용지 오배송과 복사 투표용지 사용, 무효표 발생 등 추가적인 선거 관리 부실이 함께 확인됐다.
한국의 경우 공직선거법은 선거 규정 위반이 있더라도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선거 무효를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향후 실제 투표를 하지 못하고 돌아간 유권자가 있었는지, 그 규모가 해당 선거구의 당락에 영향을 미칠 정도였는지가 향후 법적 판단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개표가 진행 중이던 이날 새벽 긴급 위원회를 열어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공직선거법상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선관위는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밝히며 관련 논란에 선을 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