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못하면 취업 불가"...한국 영어 '세계 10위'지만 취준생은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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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AI) 번역과 통역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영어 공부가 필요 없다는 낙관론까지 나오고 있지만 취업 시장의 문턱은 여전히 공인어학 점수를 요구하고 있다.

19일 YBM 산하 한국TOEIC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토익스피킹 평균 성적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세계 상위권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같은 높은 성적표 뒤에는 취업준비생들의 무거운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 토익스피킹 세계 10위…중·일 제쳤다

▲2025년 전 세계 토익스피킹 평균 성적 순위. (AI 기반 편집 이미지)

한국TOEIC위원회가 공개한 '2025년 전 세계 토익스피킹 평균 성적'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점수는 200점 만점에 129점으로 조사 대상 21개 국가 중 10위를 차지했다. 이는 중국(121점, 13위)과 일본(116점, 16위)을 크게 앞지른 수치다.

한편 글쓰기 능력을 평가하는 토익라이팅 시험에서 한국은 평균 149점으로 분석 대상 20개국 중 8위에 올랐다. 토익라이팅 1위는 필리핀(166점)이었으며 스페인(157점), 대만(157점)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인들의 전반적인 영어 구사 능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는 수준임을 증명한 셈이다.

AI 번역 시대, 기업이 여전히 '성적표'를 요구하는 이유

▲삼성전자 DX 부문 신입사원 채용 공고 일부. (출처=삼성그룹 채용공고 캡처)

최근 딥플(DeepL), 챗GPT 등 고도화된 AI 번역기가 일상화되면서 이제 영어 공부를 따로 안 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낙관론이 나왔다. 하지만 기업 채용 공고에는 여전히 토익스피킹 필수 제출 또는 점수별 가점 조항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채용 시 필수 지원 자격이나 우대 요건으로 영어 말하기 성적을 여전히 엄격하게 요구하고 있다. 대다수 대기업의 사무 및 영업 직무에서는 오픽 IH 이상 또는 토익스피킹 160점 이상을 기본 스펙으로 채택하는 추세다.

특히 삼성그룹의 경우 토익 성적을 대체 인정하지 않고 오픽이나 토익스피킹 성적만 인정하며, 해외영업이나 경영지원 등 핵심 직무는 오픽 IH 혹은 토익스피킹 레벨 7 이상을 받아야 지원이 가능하다. 일반 직무는 오픽 IL이나 토스 레벨 5 이상, 연구개발(R&D) 직무는 오픽 IM3나 토스 150점 이상으로 기준이 다소 낮지만 어학 성적 제출 자체가 필수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해외영업 등 직무 특성에 따라서는 오픽 AL이나 토스 180점(IH) 이상의 고득점을 취득해야 서류 전형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기업들이 AI 시대에도 이처럼 공인어학 성적을 고수하는 이유는 어학 점수가 지원자가 일정 기간 몰입해 성과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보는 가장 객관적인 척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즈니스 미팅, 협상, 돌발 상황 대응 등 실시간 대면 소통에서는 아직 AI 통역기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도 작용한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을 검증하는 동시에, 수많은 지원자를 가려내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토익스피킹과 오픽 같은 영어 말하기 성적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심적ㆍ경제적 부담감에 우는 취준생들

(사진제공=잡코리아)

기업들의 굳건한 어학 성적 요구는 취업준비생들의 극심한 피로감과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지원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사교육비 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지난해 대학 졸업 취업준비생 48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취업을 위해 사교육을 받는 청년은 전체의 42.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1년 동일 조사 당시 기록한 31.6%보다 1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지출 규모 역시 크게 늘어 사교육 경험이 있는 청년들의 월평균 지출액은 38만원, 연간 기준으로는 약 455만원에 육박했다. 4년 전 연간 지출액인 218만원과 비교하면 109%나 급증한 규모다.

구체적인 사교육 항목(복수응답)을 살펴보면 전공 자격증 취득(64.9%)에 이어 '영어 점수와 응시료'가 56.7%로 두 번째로 높았다. 토익스피킹과 오픽 등 말하기 시험의 회당 응시료가 8만~9만원대에 달하는 상황에서, 원하는 점수를 얻기 위한 학원비와 반복적인 응시 비용이 취준생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한국이 영어 말하기 세계 10위라는 높은 성적을 기록한 이면에는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 속에서도 여전히 수백만원의 비용을 들여 '점수용 스펙'을 채워야만 하는 청년들의 씁쓸한 현실이 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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