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엄마 등산복', '애매하고 촌스러운 바지'라는 혹평을 받던 일명 '7부 바지' 카프리 팬츠(Capri pants)가 2026년 봄ㆍ여름 패션 시장의 가장 강력한 하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에 따르면 최근 3주간 카프리 팬츠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배(3679%) 급증했으며 지그재그와 W컨셉 등 주요 플랫폼에서도 판매량이 폭증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도 "처음엔 이상했는데 보다 보니 예쁘다", "긴 바지보다 훨씬 시원하다"는 반응이 확산되는 추세다.

카프리 팬츠의 시작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4년 독일 출신 디자이너 소냐 드 레나르트가 이탈리아의 유명 휴양지 카프리섬 해변을 걷다가 바닷물에 바지 밑단이 젖는 것을 막기 위해 길이를 줄인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후 할리우드 스타 오드리 헵번이 영화 '사브리나'에서 이를 입고 등장하며 세련된 리조트룩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에는 '우아한 휴양지 여성'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2000년대 초반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패리스 힐튼 등 글로벌 팝스타들이 골반에 걸쳐 입는 로우라이즈 스타일로 즐겨 입으면서 Y2K 감성의 대표 아이템으로 변신했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실루엣과 이미지를 바꾸며 대중을 사로잡았던 역사가 2026년 현재 또 한 번 재현되고 있다.

올해 돌아온 카프리 팬츠는 과거의 캐주얼하고 스포티한 스타일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과거에는 데님과 면 소재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울, 가죽, 슬랙스 소재 등으로 반경을 넓히며 세련된 '오피스룩'으로까지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셀럽 켄달 제너와 블랙핑크 제니 등이 오버사이즈 셔츠나 재킷, 플랫슈즈와 카프리 팬츠를 매치한 스타일링이 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면서 "생각보다 세련됐다"는 인식 변화가 커졌다. 이에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와 SPA 브랜드들도 앞다퉈 신제품을 출시하며 미니멀룩, 발레코어룩 등과 결합한 스타일링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때 이른 더위도 카프리 팬츠의 수요를 앞당긴 결정적 요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15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1.4도를 기록했다. 서울 기온(송월동 대표관측소 기준)이 30도를 넘은 것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지난해(5월 21일)보다 일주일이나 앞당겨진 수치이자 2021년(5월 14일) 이후 가장 빠른 기록이다.
이처럼 예년보다 빠르게 찾아온 한여름 날씨에 발목을 덮는 긴 바지 대신 가볍고 시원하게 입을 수 있는 짧은 기장의 하의를 찾는 소비자가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촌스러움과 세련됨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던 카프리 팬츠는 기후 변화라는 환경적 배경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젊은 층의 니즈를 타고 올여름 패션 감도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아이템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