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보다 무서운 ‘자연 리스크’…기업 돈줄 흔든다 [ESG 다음은 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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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넘어 생물다양성까지 금융권 평가 대상
배터리 광물·반도체 용수 리스크 관리 비상
대기업 공급망 데이터 관리가 새 경쟁력 부상

기업의 자연 훼손 여부가 투자와 대출, 보험 조건을 좌우하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탄소배출을 얼마나 줄였는지를 넘어 기업 활동이 자연자본과 생물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금융권의 리스크 평가 대상이 되고 있다. TNFD 체계가 확산되면서 원재료 조달, 광물 채굴, 공장 입지, 용수 사용, 폐기물 처리 등은 더 이상 환경보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대출 금리와 보험 인수, 투자 판단에 반영되는 재무 리스크가 됐다.

17일 산업계에 따르면 자연자본 이슈는 일부 친환경 업종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철강, 화학, 해운 등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자동차·배터리 업계는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 등 핵심 광물 조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림 훼손, 수자원 고갈, 인권 문제를 관리해야 한다. EU 배터리 규정과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원산지와 공급자 정보를 추적하도록 요구한다. 단순히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넘어, 그 원료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됐는지까지 확인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반도체 업계의 핵심 변수는 물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은 초순수와 전력을 대규모로 사용한다. 용수 확보, 폐수 처리, 재이용률, 지역 하천 영향이 글로벌 고객사와 투자자의 평가 항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후이변으로 특정 지역의 물 공급이 흔들리면 생산 차질이 곧 공급망 리스크로 번진다. 공장 증설과 입지 전략에도 자연 리스크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물류·해운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친환경 선박, 대체연료, 항만 배출 관리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선박금융에서도 ESG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대출 금리가 달라지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효율 개선이 금융비용과 연결되는 구조다. 조선업계 역시 선박 건조뿐 아니라 연료 전환, 공급망 탄소배출, 항만 규제 대응까지 함께 요구받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도 자연자본 공시 대응을 구체화하고 있다. 삼성은 반도체 사업장의 물·생태계 리스크를 중심으로 현장 분석을 공개했다. SK는 SK케미칼 등 일부 계열사가 별도 TNFD 보고서를 냈다. LG는 배터리 공급망을 중심으로 LEAP 파일럿 평가에서 정량평가, 공시체계 구축으로 이어지는 로드맵을 잡았다. 롯데는 롯데케미칼이 국내 8개 권역 사업장을 대상으로 자연자본 의존도와 영향을 평가했다.

이 같은 흐름은 오는 27일 열리는 ‘2026 글로벌 지속가능경영 전략포럼(GSSF)’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진다. 올해 포럼은 ‘의무화 시대, 먼저 읽는 지속가능경영의 변화’를 주제로 열린다. 오전 세션에서는 생물다양성, 자연자본, 택소노미를 중심으로 자연 리스크가 기업가치와 금융 의사결정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논의할 예정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제조업은 원재료 구입 단계부터 완제품 생산 단계까지 프로세스를 정형화하고, 중간 단계의 환경오염 관련 공시 기준도 강화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공장의 오폐수 관리뿐 아니라 환경오염 이슈가 있는 업체로부터 기초 자재를 공급받는 경우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비용이 늘더라도 ESG 대응을 투자로 볼지, 단기 비용 절감을 우선할지 기업별 판단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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