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농업' GPU 32장 확보…데이터 전쟁 본격화한 '스마트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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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농업 데이터 자동추출 서비스 과제 GPU 확보
작물·기후·재배방식 제각각…농식품부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노력"

▲게티이미지뱅크 농업 로봇 (게티이미지뱅크)

농정당국이 농업 인공지능 전환(AX)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국가 AI 인프라 경쟁에서부터 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부처별 과제에 지원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약 3000장 가운데 농업 분야 확보 물량은 미미한 수준이고, 스마트팜을 통해 쌓인 데이터도 표준화·정제 없이는 민간 기업이 바로 활용하기 어렵다. 제조·금융·의료 등 다른 분야가 연산 인프라와 데이터 경쟁에 속도를 내는 사이 농업은 ‘AI가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드는 수준이다.

AI 인프라 경쟁서 드러난 농업의 현실

▲GPU 자원 배분 구조도 (사진제공=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12일 정부와 농업계에 따르면 최근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범국가 인공지능 혁신을 위한 국가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선정돼 고성능 GPU 32장을 확보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정부가 확보한 첨단 GPU 1만 장 가운데 약 3000장을 부처별 AI 과제에 우선 지원하는 사업이다. 전체 28개 부처에서 121개 과제가 신청했고 최종적으로 25개 부처 52개 과제가 선정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5개 과제에 GPU 256장을 신청했지만 최종 선정된 것은 농정원의 ‘스마트팜 데이터 자동 추출 서비스’ 1개 과제였다.

확보된 GPU는 공공과 민간에 절반씩 배분된다. 공공부문 16장은 농가의 작물 생육 사진과 영상을 AI 모델로 판독해 학습용 데이터로 구축하는 데 쓰이고, 민간부문 16장은 스마트농업 AI 솔루션 개발 기업에 제공된다. 농정원은 작물 생육·농작업·병해충 관련 사진과 영상 약 300만 장 규모의 학습용 데이터셋을 기업에 제공할 계획이다.

농업 분야가 국가 AI 인프라 경쟁에 진입했다는 의미는 있지만 GPU 물량은 기대에 못미친다. 생육 진단, 병해충 예측, 재배 전략 추천, 자율주행 농기계 등 AI 적용 분야는 넓어지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연산 인프라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데이터는 쌓였지만 AI가 바로 쓰긴 어려워…표준화가 병목

▲AX 플랫폼 구조도 (사진제공=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연산 인프라만큼 중요한 문제는 농업 데이터의 특성이다. 제조·금융 데이터는 설비, 공정, 거래, 계좌 등 일정한 기준에 따라 축적되는 경우가 많지만 농업 데이터는 작물 품종, 재배 방식, 온실·노지 여부, 지역 기후, 토양 조건, 촬영 각도와 조도에 따라 품질이 달라진다. 같은 작물 생육 사진이라도 어느 농가에서, 어느 시점에, 어떤 환경에서 촬영됐는지에 따라 AI가 학습해야 할 의미가 달라지는 구조다.

이 때문에 농업 AI 병목은 단순한 데이터 양 부족이 아니라 ‘쓸 수 있는 데이터’ 부족에 가깝다. 정부는 스마트팜코리아를 통해 시설원예 환경·제어·생육·경영 데이터를 개방하고 있다. 2015년부터 올해까지 2105호 농가, 3172작기 규모의 데이터가 축적됐고, 지난해에는 스마트팜 혁신밸리와 민간기업 확산지원사업 등을 통해 생산된 데이터셋도 추가로 공개됐다. 다만 민간 기업이 바로 AI 모델 학습에 투입하려면 정제·라벨링·표준화 작업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식품부가 국가 AI 프로젝트로 확보한 GPU 32장을 스마트농업 데이터 AX 활용에 투입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20일 시설원예, 노지 재배, 첨단 농기계 분야 AI 솔루션 기업을 대상으로 수요 협의회를 열었다. 기업들은 배액 데이터를 활용한 재배 전략, 지형·자연환경 데이터를 결합한 노지 스마트팜 모델, 자율주행 농기계 구현을 위한 피지컬 AI 등을 제시했지만 실제 농가 단위 확산을 위해서는 데이터 수집 방식과 품질 기준이 함께 정비돼야 한다.

스마트팜 정책이 그동안 시설 보급과 플랫폼 구축에 무게를 둔 사이,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품질 관리와 산업 생태계 조성은 상대적으로 늦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온실 센서와 환경 제어 장비가 늘면서 데이터는 쌓였지만, 현장별 수집 항목과 방식이 다르고 결측이나 오류도 발생한다. 농가가 입력한 경영·생육 정보 역시 표준화 수준에 따라 활용 가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설원예 넘어 노지·농기계로…민간 활용 생태계가 관건

▲대동로보틱스의 제초로봇이 제초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대동)

특히 노지 농업은 시설원예보다 AI 전환 난도가 높다. 온실은 내부 환경을 비교적 통제할 수 있지만, 노지는 기상 변화와 토양 조건, 병해충 발생, 농작업 시점이 복합적으로 얽힌다. 기후변화로 이상기상과 병해충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AI 기반 예측·진단 수요는 늘고 있지만, 노지 데이터는 수집과 표준화부터 쉽지 않다.

민간 참여를 끌어내는 방식도 관건이다. 농식품부는 확보한 GPU 32장 가운데 민간 활용분 16장을 AI 학습용 데이터셋 구축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에 나눠 배분한다. 선정 기업은 최대 4장까지 GPU를 지원받고, 농정원이 제공하는 스마트팜 데이터도 함께 활용한다. 기업이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학습용 데이터셋은 다시 스마트팜코리아를 통해 개방하는 구조다. 공공 인프라를 민간 솔루션 개발에 투입하고, 그 결과물을 다시 공공 데이터 자산으로 축적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이번에 확보한 연산 자원만으로 농업 전반의 AI 전환을 이끌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지원 대상은 1개 과제에 한정돼 있고 농업 분야가 제조·금융·의료 등 다른 산업과 같은 속도로 AI 전환 경쟁에 뛰어들려면 단발성 GPU 배분을 넘어 중장기 연산 인프라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농식품부도 제1차 스마트농업 육성 기본계획에서 ICT 기자재와 데이터 표준의 현장 적용, 스마트농업 데이터 산업 기반 조성, 데이터 거래 활성화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한 상태다. 올해 GPU 사업은 이 계획을 실제 AI 인프라와 연결하는 첫 사례에 가깝지만 농업 AI 경쟁력은 결국 현장 데이터를 얼마나 정확하게 모으고 민간이 쓸 수 있는 학습 데이터로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

농업 분야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GPU 32장 확보는 의미 있는 시작이지만 농업 전반의 AX 전환을 이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라며 "스마트팜 데이터가 축적됐다고 해도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AI 학습 데이터와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농업 AI가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노지와 축산, 농기계까지 포괄하는 데이터 표준과 민간 활용 생태계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번 국가 AI 인프라 확보는 농업 AX에 속도를 내기 위한 출발점으로, 농식품부는 스마트농업 데이터 자동추출 서비스 과제를 통해 GPU 32장을 확보했고 농촌진흥청도 별도로 32장을 확보했다"며 "정부가 그동안 구축한 환경·제어·생육 등 스마트팜 데이터를 민간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작물·기후·재배방식별 특성을 반영한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에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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