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민간 절반씩 배분…생육·병해충 데이터 300만 장 AI 학습

스마트팜 경쟁의 무게중심이 온실 제어와 센서 데이터 수집에서 인공지능(AI) 학습 인프라로 옮겨가고 있다. 작물 생육 사진과 농작업 영상, 병해충 이미지를 AI가 판독하려면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필수다. 농업 분야도 국가 AI 프로젝트를 통해 고성능 GPU를 확보하면서 스마트팜 고도화의 다음 전장이 데이터와 연산 인프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9일 정부 등에 따르면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범국가 인공지능 혁신을 위한 국가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선정돼 고성능 GPU 32장을 확보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국가 AI 생태계 조성과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부처별 사업과 연계해 GPU 약 3000장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5개 부처 52개 과제가 최종 선정된 가운데 농업 분야에서는 농정원의 ‘스마트팜 데이터 자동 추출 서비스’가 이름을 올렸다.

농정원이 확보한 GPU 32장은 공공과 민간에 절반씩 나눠 투입된다. 공공 부문 16장은 농가에서 촬영한 작물 생육 사진과 영상을 AI 모델로 판독해 학습용 데이터로 구축하는 데 쓰인다. 사람이 일일이 작물 크기와 생육 상태를 판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AI가 이미지 속 정보를 추출해 데이터화하는 구조다.
민간 기업에는 나머지 16장이 제공된다. 기업들은 스마트팜코리아 데이터와 GPU를 활용해 작물 생육 진단, 농작업 분석, 병해충 판별 등 AI 솔루션을 개발하게 된다. 농정원은 작물 생육·농작업·병해충 관련 사진과 영상 약 300만 장 규모의 학습용 데이터셋을 기업에 제공할 계획이다.
이번 사업은 단순한 장비 지원보다 ‘농업 데이터 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공공 영역에서 농가 데이터를 정제하고, 민간 기업이 이를 활용해 AI 서비스를 개발한 뒤, 구축한 데이터를 스마트팜코리아를 통해 개방하는 방식이다. 농업 현장의 데이터를 민간 기술 개발로 연결하고, 그 결과물을 다시 농가가 활용하는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농식품부가 최근 추진 중인 농업·농촌 AI 대전환 전략과도 맞물린다. 기존 스마트농업 정책이 시설원예 중심의 환경 제어와 자동화에 집중했다면, 올해부터는 생산·유통·소비·농촌 생활까지 AI 적용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정책 축이 이동하고 있다. 국가 농업AX플랫폼 구축, 스마트농업 데이터 AX 활용 사업, 현장문제 해결형 데이터 수집·활용 사업 등이 잇따라 추진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건은 데이터 품질이다. 농업 데이터는 공장 데이터처럼 조건이 일정하지 않다. 같은 작물이라도 품종, 재배 방식, 온실 구조, 지역 기후, 촬영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크게 달라진다. AI가 실제 농가에서 쓸 수 있는 수준의 판단을 하려면 단순히 사진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육 단계, 병해충 발생 여부, 작업 시점 등 현장 정보가 함께 붙은 고품질 데이터가 필요하다.
농정원은 이달부터 지역거점 우수농가 60곳의 작물 생육 이미지를 우선 AI 학습용 데이터로 구축하고, 11월부터 스마트팜코리아를 통해 개방할 계획이다. 민간 AI 솔루션 개발을 위한 참여기업 공모와 GPU 배분도 이달부터 시작된다.
농업계에서는 이번 사업이 스마트팜 기술의 확산 속도를 높일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농가가 작물 상태를 촬영하면 AI가 생육 이상이나 병해충 징후를 조기에 알려주고, 기업은 이를 기반으로 관수·환기·방제 의사결정 서비스를 고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험 많은 농가의 판단을 데이터로 전환하면 신규 농업인과 청년농의 기술 격차를 줄이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농정원은 GPU 지원과 함께 ‘현장문제 해결형 데이터 수집·활용 사업’을 통해 서비스 개발 인프라와 생육·농작업·병해충 AX 데이터를 함께 제공할 예정이다. 윤동진 농정원장은 “공공 AI 인프라를 공공 데이터 구축과 민간 솔루션 개발에 함께 활용해 스마트농업의 성과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농업 AI 경쟁은 이제 기술 실증 단계를 넘어 인프라와 데이터 확보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스마트팜 온실에 센서를 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농작물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AI 학습 기반을 누가 먼저 구축하느냐가 다음 경쟁력이 되는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GPU 확보가 농업 AI 전환의 작은 출발점에 불과하지만, 농업이 국가 AI 프로젝트의 본류에 진입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작지 않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