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신성환 "고성능 자동차된 韓 경제, 제대로 된 에어백·브레이크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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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 좋은데 왜 다들 힘들까"…양극화 심화 속 통화정책 고충
"빠르게 성장하는 韓 금융시장, 쏠림 심화 속 안전장치는 부실"
높은 저축률 역설⋯"가난하게 살고 부자로 죽는 시스템 바꿔야"

▲신성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11일 오전 서울시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은행)

경제 성장률 같은 '헤드라인 숫자'가 경제 전체의 퍼포먼스를 대변하는 시대는 끝났다. 10%의 독주가 나머지 70~80%의 어려움을 가리는 양극화 상황에서 통화정책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12일 임기 만료를 앞둔 신성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1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4년여간의 소회를 밝혔다. 신 위원은 이날 간담회에서 우리 경제가 마주하고 한은이 고민해야 할 세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그 중에서도 양극화 심화 속에서의 통화정책 난제와 국내 금융시장 성장 속 안전장치 구축 등을 화두로 꺼냈다.

신 위원은 이날 첫 번째 과제로 '양극화 심화 속 난제가 된 통화정책'을 꺼내들었다. 그는 "우리 경제의 10% 비중을 차지하는 섹터가 전체 성장률 지표를 결정하다 보니 나머지 대다수 국민이 느끼는 체감 경기와의 괴리가 극심했다"며 "제가 소수의견을 냈던 이유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은의 첫 번째 사명은 물가 안정이지만, 텍스트북(교과서)과 달리 현재 우리나라 구조에서는 성장이 물가를 자극하는 정도가 낮을 수 있다고 봤다"며 "물가 우려가 크지 않다면 실물 경제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금리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 소수 의견의 배경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성장률이나 물가 같은 헤드라인 넘버가 극단적인 양극화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건지 파악하는 데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신 위원은 "통화정책이 양극화 문제를 해소할 수 없겠지만 이 과정에서 보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해 상당히 고민을 했다"며 "그 결과 등장했던 것이 금융중개지원대출(금중대)의 재해석"이라고 밝혔다. 그는 금중대를 한국 상황에 적합한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의 하나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 코스피지수가 7800선을 돌파하고 외국인 투자자금이 적극 유입되고 있는 한국 경제시장에 대해서는 쏠림 현상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신 위원은 "이제는 실물거래보다 금융자본 이동이 환율을 좌우하는 규모가 압도적"이라며 "최근 수면 위에 오른 환율 저평가 이슈 역시 금융시장 쏠림이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설명 과정에서 급성장 중인 한국 경제를 '고성능 자동차'에 비유하기도 했다. 신 위원은 "WGBI(세계국채지수) 편입 등 금융시장은 업그레이드되고 있는데, 이를 제어할 에어백과 브레이크가 충분한지는 자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금융시장이 국제 금융시장과의 연결고리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쏠림 강도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며 "그 수단에 대해서는 정책 당국이 고민을 지속해야 하고 이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신성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11일 오전 서울시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은행)

이와 더불어 한국의 높은 가계저축률이 민간소비를 짓누르는 구조적 문제도 함께 지적했다. 신 위원은 "제가 금통위원으로 재임하는 동안 한국의 순저축률이 굉장히 높더라"며 "그에 반해 민간소비는 굉장히 지지부진한 실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처럼 성장률이 엄청나게 높은 상황에서 민간소비 증가율 등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며 "내 집 마련을 위해 허덕이며 저축하다가 노후에 큰 재산(집)만 남기고 떠나는 현 시스템은 비효율적인 만큼, 잘 살고 잘 떠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4년여 기간 동안 총 30차례에 걸쳐 기준금리 결정에 참여한 신 위원은 "지금은 전쟁 등 변수로 인하를 논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어려운 시기에 떠나게 되어 남은 분들의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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