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구멍 난 그물’ 같은 액상담배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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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주 생활문화부 기자

“이걸 다 피우고 나면 무니코틴 액상으로 갈아 탈려구요.”

액상형 전자담배(액상담배) 규제 시행 하루 전, 전자담배숍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허모 씨가 한 말이다. 그는 가격 인상에 대비해 액상을 미리 20만원어치 사뒀다고 했다. 사재기로 버틴 후 한계에 이르면 규제가 없는 제품으로 갈아타겠다는 것. 법 시행 전부터 소비자는 이미 다음 수를 내다보고 있었다.

지난달 24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담배사업법 개정안 얘기다. 지난해 12월 2일, 국회에서 법 개정이 되면서 1988년 이후 37년 만에 ‘담배의 정의’가 바뀌었다. 기존엔 '연초의 잎'으로 만든 제품만 담배였다. 이로 인해 합성니코틴을 원료로 한 액상 담배는 법적으로 담배가 아니었다. 세금은커녕 청소년 판매 금지 제한, 금연구역 규제도 받지 않았다.

정부는 이번 법 개정으로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를 규제 안으로 끌어들였다고 자평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물을 쳤다고 해서 한 번에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란 점이다. 정부가 새로 던진 그물에 구멍이 너무 많다.

첫 번째 구멍은 ‘재고’다. 정부는 법 시행 이후 제조·수입된 제품에만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기존 재고는 과세 대상에서 빠진다. 관세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3월 합성니코틴 수입량은 1280t(톤)으로, 지난해 연간 수입량 1307t과 이미 맞먹는다. 합성니코틴 1t이면 30mL짜리 액상 200만병을 만들 수 있다. 이 물량이 소진되기까지 규제의 실효성은 사실상 유예 상태다.

두 번째 구멍은 ‘세율’이다. 액상담배는 30mL 한 병 기준 정부의 50% 감면을 적용하고도 세금이 약 2만7000원이다. 궐련 담배는 규격이 표준화돼 있지만, 전자담배는 기기마다 액상 소모량이 제각각이다. 여기에 일률적 종량세를 매기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세금 폭탄을 맞게 된 소비자는 금연을 택하거나 더 싼 대체재로 향한다.

가장 심각한 구멍은 ‘유사 니코틴’이다. 유사 니코틴은 합성니코틴의 화학 구조를 살짝 변형한 물질로, 중독성과 자극 효과는 사실상 합성니코틴과 같다. 한국소비자원이 무니코틴 표기 제품 12개를 조사한 결과, 7개에서 니코틴이 검출됐다. 하지만 법적으로 유사 니코틴은 니코틴이 아니다. 이로 인해 유사 니코틴은 ‘무니코틴’ 표기를 달고 세금과 규제를 모두 피하고 있다. 이미 소비자들은 ‘유사 니코틴 갈아타기’ 행렬에 뛰어들었다.

세 구멍 모두 이번 법 개정 단계에서 막을 수 있었다. 충분히 예측가능한 변수였다. 작년 12월 국무회의에서 유사 니코틴 문제가 공개적으로 언급됐고 대통령도 방치된 문제점을 지적했다. 알고도 그대로 시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효과적인 규제는 부작용을 예측하고 한발 앞서야 한다. 이번 개정안은 한 발 뒤에서 출발했다. 정부는 이제라도 구멍을 막아야 한다. 성분이 불분명한 제품의 시장 진입을 사전 차단하도록 빠르게 보완해야 한다. 구멍 난 그물을 꿰매는 일. 정부로선 당장은 창피할 수 있다. 하지만 효능감 있는 규제 시행을 위해 더는 미뤄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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