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상생 기금 등 사회 환원 제안
삼성 희망디딤돌…SK 동반성장협의회 등

역대급 실적을 기록 중인 반도체 업계가 초과이익 처분을 두고 시험대에 올랐다. 내부 구성원을 위한 성과급 소진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한 사회 전체와 성과를 나누는 ‘상생 모델’ 구축도 고려해야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적 세제 혜택과 정책 지원 속에 성장한 산업인 만큼, 성과의 결실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공적 책임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21일 학계에 따르면 이익 배분 방식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산업계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면서, 성과급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현행 임금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이는 고질적인 노사 갈등을 풀 실마리이자, 국가 전략 산업으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핵심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1990년대 도입하며 국내 기업들의 표준이 된 ‘성과급 중심 보상 체계’가 20여 년이 흐른 지금, 오히려 노사 갈등의 뇌관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0년대 이후 국내 주요 기업들이 성과급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리면서, 기본급보다 변동 보상에 좌우되는 기형적 임금 구조가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는 반도체 슈퍼사이클 등 실적이 급증하는 시기에 갈등을 극대화한다. 기업들이 통상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설정해온 관행 속에, 이익 규모 자체가 천문학적으로 커지자 더 높은 배분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목소리도 비례해서 커지는 양상이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 교수는 “제도 설계 당시와 비교하면 삼성전자의 위상과 수익 구조는 이미 차원이 다른 글로벌 기업이 됐다”며 “과거의 잣대로는 현재의 수익을 합리적으로 나누기 어려운 만큼, 초과이익 배분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수백조 원에 달하는 특정 사업부의 성과를 내부 보상으로만 소진하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비대해진 초과이익을 기존의 좁은 임금 체계 안에 억지로 밀어 넣기보다는,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사회적 가치 확산을 아우르는 새로운 분배 패러다임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기업의 성과급 논의를 넘어, 그 범위를 ‘사회적 환원’으로 전격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반도체 산업은 국가적 차원의 대규모 전력과 용수, 인프라 지원은 물론 지역사회와 산업 생태계 전반의 희생과 협력 위에서 성장한 ‘공공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반도체 기업이 협력사와의 거래 구조를 개선하거나 산업 안전 문제 해결에 투자하는 등 사회적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성과를 내부 구성원에게만 배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비약적인 성장은 임직원의 노고뿐만 아니라 협력사의 헌신, 소비자의 신뢰, 정부의 과감한 연구개발(R&D) 지원 및 수출 금융 등이 결합된 종합적인 결과물이다. 이러한 다각적인 기여가 성과급 산정의 논리적 근거에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역시 현재의 보상 구조에 쓴소리를 냈다. 조 교수는 “기업의 성과는 과거부터 이어진 투자와 축적의 결실인데, 이를 현재의 구성원들이 독점하겠다는 발상은 적절치 않다”며 “성과의 과실은 마땅히 협력업체를 비롯한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더 넓고 깊게 흘러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따라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청년 고용 기금 조성 △협력사 기술 인력 양성 펀드 △지역사회 상생 기금 등 구체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특정 대기업의 성과급이 내부 구성원의 주머니에만 머무는 ‘성벽 구조’를 허물고,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다.

성과급을 둘러싼 이익 배분 논의가 뜨거운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이미 다양한 사회공헌과 협력사 지원을 통해 ‘구조적 성과 공유’를 실천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단순한 일회성 기부를 넘어, 자금·기술·인재 양성을 아우르는 상생 생태계를 구축해 초과이익의 구조적 환원이 지속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2005년 국내 최초로 협력사 거래대금 전액 현금 지급을 시작한 이래, 상생의 보폭을 꾸준히 넓혀왔다. 1조원 규모의 ‘ESG 펀드’를 조성해 협력사의 환경·안전 투자를 돕고 있으며, 보유 특허 2500여 건을 무상 개방해 중소기업의 기술 자립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인재 양성 성과도 독보적이다. 자립준비청년 지원 사업인 ‘희망디딤돌’을 통해 지난 10년간 약 5만5000명의 청년에게 주거와 취업의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삼성청년SW·AI아카데미(SSAFY)’는 2025년 12월 기준 수료생의 85%인 8566명이 취업에 성공하며, 기업의 이익이 사회적 고용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모델을 증명했다.
SK하이닉스는 2001년 출범한 ‘동반성장협의회’를 통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공급망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일 열린 총회에서는 기존의 일방향적 지원에서 벗어나, 협력사가 직접 현장 문제를 제기하고 과제를 설정하는 ‘협력사 주도형’ 구조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유사한 관심을 가진 협력사들이 소그룹을 구성하면 SK하이닉스가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는 산업 생태계 전체의 기초 체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는 향후 ‘반도체 아카데미’를 통한 교육 지원과 금융·경영 컨설팅을 더욱 확대해, 초과이익의 과실이 공급망 구석구석에 스며들게 한다는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이미 수조원 규모의 유무형 자산을 사회와 공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과급 논란이 자칫 이러한 진정성 있는 상생 활동의 가치를 가리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결국 향후 이익 배분 논의는 기업의 자발적 사회 기여와 노사 간의 직접 보상 사이에서 어떤 접점을 찾느냐가 핵심 관건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