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계열사 도급거래 시가, 사내 문건·업계 평균으론 부족"

과세당국이 그룹 계열사 간 아파트 공사 도급거래에 증여세를 부과할 때 실무상 관행적으로 활용해온 사내 목표 수익률이나 업계 평균만으로는 시가 산정 근거로 부족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건설업 등 계열사 간 거래에서 과세당국의 입증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고법 행정3부(윤강열 부장판사)는 우오현 SM그룹 회장 일가가 용산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증여세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과세당국이 SM그룹 계열사 간 아파트 공사 도급거래에서 우방건설산업(현 SM상선)이 SM생명과학(현 삼환기업)에 시공용역을 저가로 제공하고 시행업무 일부까지 무상으로 수행했다고 보고 부과한 증여세 68억원을 전액 취소하라고 명령했다.
핵심 쟁점은 시공용역의 시가 산정이었다. 증여세를 부과하려면 시가와 실제 도급금액의 차액이 시가의 30% 이상이거나 3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시가는 원칙적으로 유사한 외부 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삼지만, 아파트 시공용역은 현장마다 규모와 위치, 품질 등이 달라 비교 거래를 찾기 어렵다. 이 경우 법인세법 시행령은 보충적으로 ‘원가+(원가×통상 수익률)’을 시가로 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상 수익률은 해당 사업연도 중 ‘특수관계인 외’의 자에게 제공한 유사한 용역거래의 수익률을 의미한다.
문제는 계열사 내부 도급계약의 경우 특수관계인 외의 거래 실적 자체가 드물어 통상 수익률 표본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는 “계열사 내부 도급계약의 경우 시공사가 특수관계인 외 거래에서 비교 가능한 유사 거래를 많이 수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 사건의 경우에도 우방건설의 아파트 건설공사 7건 중 특수관계인 외 거래는 1건뿐이었는데, 법원은 1건만으로는 통상 수익률의 표본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과세당국은 ‘도급금액 대비 15% 이상 적정 시공마진 확보’라고 적힌 SM그룹 내부 문건, 우방건설의 2015∼2018년 시공용역 수익률 실적, 대기업 공사용역 수익률 통계 등을 근거로 통상 수익률을 15%로 산정했다. 1심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항소심은 이를 모두 배척했다. 내부 문건의 15%는 경영목표이거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대비용으로 임의 기재한 수치에 불과하고, 업계 평균 통계도 개별 공사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수치라고 봤다.

법조계에서는 입증 기준이 엄격히 적용된 사례라는 평가다. 실무상 과세관청은 계열사 간 거래 조사 시 기업 내부 문건이나 동종업계 평균으로 시가를 추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판결은 이 같은 간접증거 조합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안희철 법무법인 디엘지 대표변호사는 “법 조항에 더 충실하고 엄격하게 판단한 것”이라며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시가가 객관적으로 산정돼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인데, 과세당국이 이를 정확히 입증하지 못했다면 저가 거래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과세 실무에 적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안 변호사는 “과세당국이 유사 거래에서 과세하려면 비특수관계인에게 제공한 유사 용역 사례가 복수로 있어야 하고, 그 사례들이 왜 유사한지도 세대수와 규모, 지역 등을 따져 입증해야 할 것”이라며 “굉장히 어려운 기준”이라고 말했다.
다만 입증 책임을 과세관청에만 지운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박 변호사는 “재판부는 시행용역 부분에 대해서는 ‘원고들이 자료를 제출하기 용이함에도 이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납세의무자 측 입증 부담을 인정했다”며 “시가 입증은 과세관청에, 시가 산정 방식의 불합리성 입증은 납세자에게 배분하는 구조다. 내부 거래라는 이유만으로 뭉뚱그려 과세할 수는 없지만 납세자도 자기 지배영역 내 사실관계는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균형 잡힌 메시지”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시행용역 측면에서는 과세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한다”며 “법원은 시공사 직원들이 시행사 업무를 대가 없이 대행하는 것은 명백히 ‘용역의 무상 공급’으로 평가해 증여의제 대상이 맞다고 했고, 특히 무상 제공 용역의 원가를 사업장별 분양금액 기준으로 안분한 국세청 방식도 합리적이라고 인정했다. 이 부분은 향후 과세관청이 유사 사건에서 계속 활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 확보된 것이어서 기업 입장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