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봉 한 바퀴에 100만달러 증가…韓 기업 ‘우회 물류 청구서’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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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보다 무서운 물류비…납기·재고 전략까지 흔들
LNG·나프타 우회 수송 확대…공급망 재편 가속 신호

미국과 이란 간 협상 결렬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봉쇄’를 선언하면서 글로벌 리스크의 축이 유가에서 물류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상황에서도 산업계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표는 운임과 보험료, 납기다.

13일 해운·산업계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통항 불안이 커지면서 글로벌 선사들은 기존 중동 항로를 회피하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운항을 확대하고 있다. 사실상 희망봉 경로가 ‘표준 항로’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사장은 최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선박을 기존 경로를 벗어난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돌렸다"며 "이에 따라 조달 기간이 크게 늘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기존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한국에서 유럽으로 부품을 보냈지만, 해당 해협 통행이 어려워지면서 희망봉을 돌아가는 우회 항로를 택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항로 변경으로 운송 거리가 늘어나면서 톤마일(톤수와 마일수를 곱한 것·수송량 단위)이 증가하고, 연료비와 선박 회전율이 동시에 악화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희망봉 우회 시 리드타임(조달 기간)이 10~14일 늘어나고, 항차(한 차례의 항해)당 100만달러(약 15억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운임 상승과 함께 전쟁 위험 보험료도 급등하고 있다. 기존 대비 수배 이상 오른 보험료는 선사뿐 아니라 화주 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 여기에 납기 지연까지 겹치면서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공급망 운영 전반에 부담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원가 상승은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10% 상승할 때마다 국내 제조업 생산비용은 0.71%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두바이유가 150달러에 도달하면 제조업 원가는 5.19% 폭등해 상당수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적자 구간에 진입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기존 호르무즈 항로 대신 홍해 우회 항로 활용도 검토하고 있지만, 미·이란 협상 결렬에 이어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가 이스라엘 참전을 공식화하면서 홍해도 봉쇄 우려가 남아있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가격 리스크’가 아닌 ‘물리적 차단 리스크’로 규정하고 있다. 원유 가격 상승보다 운송 차질과 납기 지연이 기업 손익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에너지·화학 원료의 경우 충격이 더 크다. 액화천연가스(LNG)와 나프타 등 주요 원료의 우회 수송이 확대되면서 조달 비용이 상승하고 있으며 이는 석유화학 제품과 제조업 전반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의 기존 운영 전략도 흔들리고 있다. 재고를 최소화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저(低)재고·저비용’ 모델이 한계에 직면하면서 재고 확대, 선복 확보, 공급선 다변화 등 공급망 전략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LNG 공급 재배치와 투자 확대가 이어지면서 중동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물류비 급등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설계 자체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전쟁이 끝나더라도 높아진 비용 구조와 분산된 공급망은 되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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