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 손해 없으면 경영판단 인정해야” [상법 개정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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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판단의 원칙’ 명문화 시급
처벌 중심 상법, 성장 가로막아
“노조에 고발권 부여한 것 아냐”

▲2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가결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상법 개정안 시행 이후 기업 경영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면서 제도 보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재계와 법조계는 처벌 중심 규율이 확대될 경우 정상적인 경영 판단까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상법 개정안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의 핵심 쟁점은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다. 개정 상법은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장했지만, 주주 이익 침해 여부를 판단할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이로 인해 기업의 투자, 구조조정, 본사 이전 등 전략적 의사결정이 사후적으로 배임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본사 이전처럼 단기적으로 비용이 발생하는 의사결정도 장기적으로는 세제 혜택, 비용 절감 등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 같은 경영상 판단까지 사법적 잣대로 평가하면 기업은 아무 결정도 내리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고 지적했다.

사외이사 부담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주주 손실을 이유로 사외이사를 상대로 한 고소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사외이사가 독립적 견제 역할을 하기보다 법적 책임을 우려해 소극적 의사결정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며 “이사회 기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와의 충돌도 변수다. 조석영 법무법인 서린 변호사는 “개정 상법은 주주 보호를 위한 것이지 노조에 고발권을 부여한 것은 아니다”라며 “이사회 판단을 곧바로 배임으로 연결하는 것은 법 취지와 거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조합은 단체교섭과 파업 등 노동법상 수단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경영 판단을 형사 문제로 끌고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 경영진과 이사들의 임원배상책임보험 가입도 늘고 있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은 최고경영자(CEO)나 이사회 구성원 등 경영진의 부당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금과 소송 비용 등을 보장하는 상품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국내 손해보험업계의 임원배상책임보험 계약 건수가 2020년 254건에서 2024년 1712건으로 7배 급증했다. 경영진이 임원배상책임보험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책임 유인과 위험 분담 간 균형을 고려한 정책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경영 판단의 원칙’ 명문화와 판례 축적을 꼽는다. 의도적 손해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경영진 판단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처벌 중심의 상법 체계를 성장 지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와 경영 의사결정이 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의미다.

법조계 관계자는 “상법 조문만으로 모든 경영 상황을 규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법원이 구체적 기준을 축적해 나가고 입법적으로도 보완 장치를 마련해야 사법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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