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청약 시장에서 시세보다 낮은 분양가에 수요가 몰리면서 사실상 최고점대 청약자만 당첨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 드 서초' 59㎡C형 2가구의 당첨 가점은 모두 84점으로 집계됐다. 청약 가점 만점이 나온 것은 올해 처음이며 서울에서는 ‘잠실 르엘’ 이후 7개월 만이다.
청약 가점 84점은 사실상 '완벽한 조건'을 요구한다. 무주택 기간 15년 이상(32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 15년 이상(17점), 부양가족 6명 이상(35점)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즉, 7인 이상 가족이 15년 넘게 집 없이 살아온 경우에 가능한 점수다.
이번 만점 사례는 서울 청약 시장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집을 갖지 못한 채 장기간 버티고, 꾸준히 청약통장을 유지하며, 동시에 가족 구성원까지 많은 경우에만 ‘당첨 안정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주택형별로 경쟁률이 가장 높았던 59㎡A형은 당첨 가점이 최고 79점, 최저 74점으로 나타났다. 이 역시 5~6인 가구가 받을 수 있는 최대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았던 59㎡형의 당첨선은 69점으로, 4인 가구 기준 최고점에 해당한다.
청약 시장에서는 이미 ‘70점대 중반’이 사실상의 기준선으로 굳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혼부부나 1~2인 가구, 혹은 무주택 기간이 짧은 수요자에게는 구조적으로 접근 자체가 어려운 셈이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높은 가점 경쟁은 분양가 상한제의 영향과 맞물려 더욱 심화되고 있다. ‘아크로 드 서초’ 역시 상한제 적용으로 분양가가 시세 대비 낮게 책정되면서, 1순위 청약에 3만2973명이 몰려 평균 1099.1대 1이라는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시세 차익 기대가 커질수록 '가점이 높은 사람만 당첨되는 구조'는 더 공고해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청약 제도의 본래 취지인 '주거 사다리' 기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점이 높다는 것은 곧 오랜 기간 집을 사지 못했거나, 가족 부양 부담이 크거나, 혹은 결혼과 출산을 일찍 선택한 삶의 궤적을 의미한다. 사회 초년생이나 1인 가구, 신혼부부는 제도 안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결국 청약 제도가 ‘기회를 넓히는 장치’가 아니라 ‘조건을 충족한 일부에게만 열리는 문’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급 부족과 가격 격차가 이어지는 한, 청약 시장은 당분간 고가점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주거 사다리 복원을 위해서는 단순한 공급 확대를 넘어, 가점 체계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