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한 시간은 누구의 노동?”...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 지침에 산업계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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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임금제 규제 지침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가 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 지침을 통해 임금 산정 기준을 구체화한 가운데 산업계에서는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AI 에이전트 확산으로 근로시간 개념이 흐려진 상황에서 정액수당제 제한까지 더해지며 중소기업·스타트업과 IT 업계를 중심으로 인건비 부담과 프로젝트 차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8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공짜노동 근절을 위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은 노사정이 지난해 말 포괄임금 오남용 개선에 합의한 이후 마련된 후속 조치다. 현행 근로기준법과 판례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지켜야 할 임금 산정·지급 기준을 구체화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지침에서 정부는 임금 지급의 기본 원칙을 명확히 했다. 사용자는 임금대장과 임금명세서에 기본급과 각종 수당을 구분해 기재해야 하며 실제 근로시간에 따라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산정해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의 활용 범위가 늘어나면서 근로시간 산정 기준이 모호해질 수 있다는 업계의 지적이 제기된다. 한 AI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은 직무나 평가 체계가 구체적이지만 중소기업·스타트업은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가 문제”라며 “개발자가 코딩을 시키고, 20분 동안 AI가 업무를 수행한 시간은 실제 개발자가 일한 시간으로 봐야 할지 아닐지가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특히 현장에서 관행처럼 활용돼 온 정액급제와 제 수당을 포괄한 정액수당제에 제한 기준을 두고 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침은 기본급과 수당을 구분하지 않거나 법정 수당을 포괄해 지급하는 방식은 허용되지 않으며 이른바 ‘고정 OT 약정’을 체결했더라도 실제 근로시간 기준 수당보다 적을 경우 차액을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를 두고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사정 합의를 무력화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경총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노사정은 지난해 12월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 합의로 ‘포괄임금계약의 전면 금지’가 아닌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를 목적으로 정액급제를 개선하면서 정액수당제와 고정OT 형태는 금지하지 않기로 했다”며 “정부가 지침을 통해 정액수당제까지 원칙적으로 금지한 것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어렵게 도출한 사회적 합의를 위배한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이어 경총은 “업종 또는 직무 특성상 근로시간의 엄격한 기록·관리에 어려움이 있어 정액수당제 활용이 불가피한 사업장까지 금지하는 것은 현장의 혼란과 법적 분쟁을 초래할 것”이라며 “현장에서의 오남용이 문제 되는 만큼 정부는 금지보다 불공정한 관행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IT 업계에선 이미 진행 중인 대형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대형 프로젝트를 앞둔 경우 특정 시기에 몰아서 업무를 하게 되는데 (이번 지침으로)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기간이 길어지거나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이미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경우 납기일을 맞추기 어려워져 기업 간 문제로까지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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