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레인 무하락에서 12일 소방관들이 이란 공격으로 불이 난 연료 탱크를 진화하고 있다. 무하락(바레인)/로이터연합뉴스
전쟁 뉴스를 접할 때 흔히 미사일이나 공습, 외교전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 전선 밖에서 그보다 더 빠르게 체감되는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기름값이 오르고 정부 재정이 흔들리며, 중앙은행이 금리를 고민하고 기업들이 공급망을 다시 짜는 '경제 전쟁'입니다. 중동에서 울린 총성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가 치열한 경제 전선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걸프 국가들에 원유와 천연가스(LNG) 등의 안정적인 공급을 요청할 정도로 이 거대한 충격파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에 펌프잭이 보인다. 텍사스/로이터연합뉴스
전쟁이 벌어진 곳은 중동이지만, 그 청구서는 아시아와 유럽 전역으로 날아들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는 총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선제적으로 재정을 투입하며 방어선 구축에 나섰습니다. 일본은 휘발유 가격 안정을 위해 8000억 엔 규모의 예비비를 투입하기로 했고, 인도네시아는 대규모 에너지 보조금을 편성해 연료와 전기 가격 안정을 지원할 방침입니다. 호주와 말레이시아 등도 연료 가격 안정에 상당한 비용을 투입하고 있으며, 한국 또한 고유가 충격 등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 대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대응 방식은 한층 더 직접적입니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등 5개국 재무장관은 에너지 기업들에 대해 유럽연합(EU) 차원의 '횡재세' 도입을 촉구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이익을 얻는 기업이 있다면, 그 이윤을 소비자 보호와 물가 방어에 환원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전쟁의 경제적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전형적인 전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에너지 쟁탈전부터 중앙은행 금리 딜레마까지
▲셰브런 호주 휘트스톤 LNG 프로젝트 전경. 출처 셰브런
이번 경제 전쟁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에너지 확보'입니다. 대만의 경우 호주와 미국 등으로 대체 공급선을 확보하고 신규 LNG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생산기지인 대만이 공장 증설보다 연료 확보에 먼저 매달렸다는 점은 에너지가 산업의 생존 전제임을 시사합니다. 세계 주요 원유 수입국이자 중동 의존도가 높은 한국 역시 핵심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을 요청하며 발 빠른 대응에 나섰습니다.
에너지 위기는 곧바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유가상승이 수입 물가와 환율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란발 리스크와 엔화 약세 속에서 인플레이션 위험을 막기 위해 일본은행(BOJ)이 점진적인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진단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여기에 폭스콘조차 글로벌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경고할 만큼, 기업들은 원가 상승과 물류 차질 속에서 공급망 방어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 한국 산업계 강타한 파장…업종별 셈법 교차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로 중동전쟁의 종전 기대감이 꺾이면서 국내 증시에서 급락장이 펼쳐졌다.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44.65포인트(4.47%) 하락한 5234.05를 기록했다.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59.84포인트 (5.36%)하락한 1056.34에 거래를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전 거래일보다 18.4원 오른 1519.7원으로 집계됐다. 김예연 인턴기자 kimye@
결국 이번 전쟁은 산유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금리와 환율을 통해 한국의 가계와 기업으로 번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당장 유가상승, 정유 및 석유화학 원료 수급, 해상 운송 안정화, 정부의 재정 대응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주요 산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심상치 않습니다. 항공업계는 치솟는 항공유 부담에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으며, 수출 주도형 IT·자동차 업계는 호르무즈 해협 등 주요 해상 물류망의 불안정성으로 운임 상승과 납기 지연이라는 이중고를 겪을 수 있습니다. 석유화학 업계 역시 기초 원료인 나프타 가격 급등으로 원가 압박이 커지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보조금으로, 유럽은 세금으로, 대만은 자원 확보로 버티는 이 총성 없는 경제 전쟁 한가운데서, 한국 산업계도 공급망 방어와 생존을 위한 새 판 짜기가 시급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