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가까이 표류해온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합병의 핵심 열쇠를 쥔 KT가 박윤영 신임 대표 체제로 전환하면서 그간 지지부진했던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기대다.
5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KT는 박윤영 대표이사 체제로 새출발했다. 박 대표는 내실 경영과 인공지능(AI) 중심의 본업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그러면서 KT는 지난달 말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미디어 부문을 커스토머 산하로 통합한다고 밝혔다. 미디어 영토 확장에 공격적이었던 이전 경영진과 달리 미디어를 통신과 결합된 서비스로 보는 만큼 독자적인 미디어 사업보다는 수익이 나는 데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독주 체제가 굳어지는 상황에서 티빙과 웨이브 양사 모두 영업손실을 면치 못하고 있다. KT 입장에서도 티빙 지분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통합 OTT 출범이 절실한 시점이다. 박 대표가 경영 정상화의 카드로 OTT 합병 동의 카드를 꺼내 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KT는 티빙의 2대 주주로 KT스튜디오지니를 통해 티빙 지분 13.5%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KT는 유료방송 1위 사업자로서 티빙과 웨이브의 통합을 미디어 시장의 위협 요소로 바라봐왔다. 김채희 전 KT 미디어부문장은 지난해 4월 기자간담회에서 “KT 의사와는 무관하게 합병을 전제로 한 길을 가고 있다”며 “과연 티빙의 주주 가치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더해 KT는 지난해 해킹 사태와 대표이사 후보 선임과 사외이사 갈등 등 온갖 내홍을 겪은 탓에 사실상 합병 논의에서 걸림돌로 작용했다.
합병 주체들의 움직임도 긴박해졌다. 웨이브는 1일 이사회를 열고 이양기 CJ ENM OTT경쟁력강화TF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합병 대상인 티빙의 모기업 출신 인사를 수장으로 영입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신임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합병 추진 중인 웨이브와 티빙 간 시너지를 발휘해 이용자들에게 최상의 경험을 선사하겠다”며 합병 의지를 공식화했다. 이는 양사의 인적·화학적 결합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풀이된다. 이미 티빙과 웨이브는 각사의 대표 지식재산권(IP)을 상호 공급하고 결합 요금제를 출시하는 등 사업 통합을 위한 실무 작업을 상당 부분 진행해온 상태다.
업계에서는 KT의 리더십 교체가 국내 OTT 생존력 확보의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을지 주목한다. 3년여간 양사의 합병이 지지부진한 사이에 글로벌 공룡 넷플릭스의 점유율은 날로 높아지고 있어서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1500만 명대를 유지하며 국내 시장 점유율은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티빙(733만 명)과 웨이브(376만 명)의 MAU는 합쳐도 1100만 명대에 그쳐 격차가 뚜렷하다.
국내 IT 업계 관계자는 “이번 합병은 국내 미디어 산업의 생존이 걸린 마지노선이다. 글로벌 공룡의 공세 속에 쪼개진 플랫폼으로는 막대한 콘텐츠 투자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도 “물론 KT의 새 대표이사 취임이 얼마 되지 않아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럼에도 속도를 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