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도 “4월이 한계”…중소현장 이미 작업 축소 움직임

최근 찾은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타워크레인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지만 현장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자재 수급이 한 번만 어긋나도 공정 전체가 멈출 수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건설 현장은 중동 전쟁에서 비롯된 ‘공사 중단 위기’ 초입에 들어섰다. 건설 공사는 특성상 자재 하나만 막혀도 공정 전체가 멈출 수 있어 긴장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는 비축 물량으로 버틸 수 있는 시한을 이달로 보고 있으며 5월부터는 공사 지연을 넘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언급된다.
특히 준공을 앞둔 현장에서는 창호 수급이 변수로 거론된다. 나프타 가격 상승 영향으로 창호 생산에 차질이 생길 경우 마감 공정 전반이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창호 설치 이후 단열·내장·도장 등 후속 공정이 이어지는 만큼 반입이 늦어지면 전체 일정이 순차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국내 대형 건설사 한 관계자는 “아파트 공사의 마지막 단계에서 새시(창틀) 설치가 이뤄져야 준공이 가능한데 자재가 없으면 공사를 끝낼 수 없다”며 “준공 일정이 밀릴 경우 입주까지 연쇄적으로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하는 단열재와 방수재, 페인트, 도배지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특정 자재의 납기 차질은 단순한 비용 문제를 넘어 전체 공정표를 흔드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레미콘 생산에 필요한 혼화제도 나프타에서 추출한 에틸렌으로 만들어지는데, 이 공급이 막히면 콘크리트 타설이 어려워져 구조공사 공정 자체가 중단될 수 있다.

대형사들의 경우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지만 중소형사의 경우 더욱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규모가 작은 현장에서는 공사 속도를 조절하거나 작업 시간을 줄이는 사례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부산의 한 건설 현장에서 감리 업무를 맡고 있는 김모 씨는 “현장에서 자재를 아껴 쓰라는 얘기가 최근 들어 늘어 근무자들도 불만이 많다”며 “전반적으로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연장이나 야간 작업을 줄이자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이미 공사비 인상에 나선 업체도 있다. 현대건설은 최근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조합, 강서구 등촌1구역 재건축조합, 송파구 마천4구역 재개발조합 등에 자재비 상승을 반영한 공사비 증액을 줄줄이 요청했다. 현재 책정된 공사비가 과거 기준에 머물러 현실과 동떨어진 데다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다른 대형 건설사들도 이달 이후 상황을 변수로 보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원자재와 관련해 현재는 비축 물량이 있어 4월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현 상황이 5월까지 이어질 경우 악영향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도 “나프타 영향을 받는 단열재와 방수재는 공장에서 생산 중단 얘기가 나올 정도로 수급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전쟁이 장기화되면 자재가 들어오지 않는 기간만큼 공기 지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업계에선 건설 자재 공급망 불확실성이 공사비 상승을 넘어 수요 위축, 자금조달 경색 등 복합적인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대외 의존도와 에너지 수입 비중이 높은 우리 경제 구조상 상황이 장기화하면 물가 상승과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경기침체)으로 전이될 위험이 커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가와 원유 수급, 환율 등 대외 변수는 건설공사비를 통해 분양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공사비 상승은 PF 사업성에 직결돼 신규 사업 추진을 어렵게 하고 기존 사업에서도 공사비 갈등과 공정 지연, 나아가 공사 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