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상승에 인플레 쓰나미' 한은 통화정책 운신 폭 좁아져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정책금리를 2연속 동결하면서 한국은행도 다음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예정된 4월을 포함해 당분간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란 사태발 유가 급등으로 고물가 가능성이 커진 데다 한국과 미국 간 기준금리 역전 차가 커질 경우 가뜩이나 고공행진 중인 환율을 자극할 여지도 남아있어서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연준은 17∼18일(현지 시각)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3.50∼3.75%로 유지했다. 미국 정책금리는 지난해 9·10·12월 3연속 인하 이후 올해 1월과 3월 동결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재 규모와 기간을 알 수 없는 에너지 충격에 직면했다"면서 "현 상황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기대 심리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FOMC 결과를 두고 시장에서는 연준의 정책금리 인하 예상 시점을 연기하고 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동 전쟁의 영향권에 있는 3~4월 물가는 상방 리스크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이에 연준의 정책금리 인하 시점이 당초 전망보다 3개월 늦은 9월과 12월 단행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인플레이션(고물가) 전망을 높인 상황에서 전쟁이 길어질수록 미국 정책금리 향방은 인하가 아닌 인상을 향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러한 상황 속 한은 금통위 역시 다음 달 10일 열릴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7연속 동결을 결정할 가능성이 여느 때보다 커졌다. 중동 사태 장기화에 따른 유가 급등으로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상황은 한국 역시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2월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20년 수준 100)는 145.39로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 연속 우상향 중이다. 특히 아직 공개 전인 3월 수입물가의 경우 중동 사태 여파가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만큼 상향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1500원대 안팎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원·달러 환율도 한은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21.9원 오른 1505.0원에 개장했다. 원달러환율 1505원선은 글로벌 외환위기 당시인 2009년 이후 17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환율 급등 배경은 이란 사태에 따른 국제 유가 급등과 미국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 연준 FOMC 회의 결과 등 삼중고가 겹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하향 조정할 경우 환율 상승세는 더 가팔라질 여지가 크다. 한국(2.5%)과 미국(3.5~3.75%)의 기준금리 역전차는 1.0~1.25%포인트 수준이다. 한국이 기준금리를 낮춰 미 정책금리와의 역전 차를 키울수록 외국인 투자자금이 더 높은 수익률을 향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하락할 여지가 크다. 전쟁 장기화 시 연준의 정책금리 상향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는 만큼 그에 따른 금리 역전차 확대 가능성도 남아있다.
이처럼 대내외 변수 속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한은은 인하 없는 '장기 금리 동결'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달 26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첫 공개된 금통위원 7명의 점도표(dot plot)를 보면, 6개월 뒤인 8월까지 기준금리가 2.50%로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점)이 전체 21개(위원당 3개 전망치) 가운데 16개로 가장 많았다. 나머지 가운데 4개는 0.25%포인트(p) 낮은 2.25%에, 1개는 0.25%p 높은 2.75%에 찍혔다.
황건일 금통위원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 "3월 들어 중동지역 분쟁에 따른 대외 환경 급변으로 전망 경로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금융·외환시장 변동성도 크게 확대됐다"며 "향후 통화정책은 특정 방향으로 기대를 형성하기보다, 대내외 여건 변화와 경제지표 등을 지켜보면서 당분간 신중한 중립 기조를 가져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날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한 유상대 한은 부총재 역시 "간밤 FOMC 회의 결과로 연준 통화정책 경로의 불확실성이 더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며 "중동지역 정세 불안 지속 등 대외 리스크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고 강한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국내 금융·외환시장에서도 높은 변동성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각별한 경계감을 갖고 대내외 리스크 요인의 전개양상을 살필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