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가격제 초강수…“주유소 수급 불균형 심화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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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유사 공급가 상한 설정해 기름값 억제
매점매석 차단·손실 보전 방안 병행 추진
업계 “공급 왜곡·주유소 수급 편차 가능성”

정부가 중동발(發) 고유가 파고를 넘기 위해 ‘석유 최고가격제’라는 30년 만의 강수를 빼 들었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시장에 맡겨졌던 기름값에 정부가 다시 직접 메스를 들이대기로 하면서, 물가 안정이라는 기대와 공급망 왜곡이라는 우려가 산업 현장에서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에너지 민생 분야에 있어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금주 내에 시행할 예정"이라며 "이와 함께 매점매석 행위 금지를 위한 고시도 같이 시행해 사재기나 담합, 판매 기피, 불법 유통 등을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향후 국제유가가 더 오를 경우 유류세 추가 인하와 유류 소비자 직접 지원 방안도 검토할 방침이다. 아울러 중동 외 지역으로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국제 공동 비축유 우선 구매권을 행사해 석유 공급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기로 했다. 수입의 54%를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해 수급 차질이 우려되는 나프타 등 주요 품목에 대해서도 대체 수입처를 발굴할 계획이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주유소 판매가격이 아니라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공급가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는 방식은 싱가포르 현물 시장 가격(MOPS) 등 국제 제품 가격에 일정 마진을 더해 정유사 공급가 상한을 설정하는 구조다. 가격 통제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유사의 물량 빼돌리기를 차단하는 ‘매점매석 고시’도 함께 발동한다.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정유사의 손실을 국가가 보전하는 안도 논의 중이다.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 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9일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된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1905.70원으로 전날보다 3.03원 올랐다. 유가 오름세가 이어질 경우 리터당 2000원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 충돌로 국내 주유소 기름값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8일 서울 최저가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893.3원으로 전날보다 3.9원 올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은 1944.7원을 나타냈다. 휘발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경유 가격은 1915.4원으로 4.8원 상승했다. 휘발유 가격의 리터당 2000원 돌파가 가시화되자 정부는 석유류 '최고가격 지정제(가격상한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정유업계에서는 정책 취지에는 협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손실 보전 방식이 핵심 변수라는 분위기다. 현재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정유사들은 수출을 통해 높은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고 가격제가 시행되면 정유사들은 수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초과이윤을 포기하고 국내 공급을 늘려야 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제 제품 가격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가격 상한이 설정되면 정유사 입장에서는 수출로 얻을 수 있는 마진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며 “결국 초과이윤의 기회비용을 정부가 어느 수준까지 보전해 줄 지가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현재도 국제 제품 가격 상승폭 대비 국내 공급가격 반영률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며 “가격 통제까지 들어오면 정유사 수익 구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고 가격제가 시행되면 내수 공급 물량이 제한되면서, 주유소별 가격 편차나 수급 편차가 심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정유사가 한정된 내수 물량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거래 관계가 안정적인 일부 주유소에 물량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여러 정유사 제품을 현물 시장에서 조달하는 주유소들은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주유소가 필요할 때 비교적 자유롭게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지만 가격 상한제가 시행되면 정유사와 관계가 좋은 일부 주유소에만 수급이 몰리고, 주유소간 편차가 커지며 소비자가 불편을 겪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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