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엄흥도 캐릭터 성공...장르보다 즐길거리 중요해져

서민지 쇼박스 배급전략팀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영화시장의 흐름을 이렇게 요약했다. 사극은 ‘요즘 잘 안 된다’, 로맨스는 ‘극장에서 굳이 안 본다’는 통념이 강해진 시기다. 그런 와중에 쇼박스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와 ‘만약에 우리’를 연달아 시장에 내놓고, 각각의 방식으로 관객을 끌어모으며 흥행 반열에 올려놓았다.
특히 ‘왕사남’은 쇼박스 내부에서 시나리오 단계부터 만족도가 높았던 작품이었다. 서 팀장은 “투자 심의 단계에서부터 개봉 시기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며 “팀 내에서도 연휴 전주에 공격적으로 들어가자는 의견이 강했다”고 말했다.
개봉 초기 성적에 대해 “첫날은 조금 아쉬웠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시사회 이후 온라인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서 팀장은 “시사회 때부터 리뷰가 빠르게 올라오면서 입소문이 붙을 수 있겠다는 감이 왔고, 설 연휴가 지나면서 조심스럽게 천만까지 기대해 볼 수도 있겠다는 기류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팀 막내인 조성주 인턴은 ‘왕사남’의 강점에 대해 “요즘 시장에 나온 작품 중에서 부담이 제일 적은 영화였다. 누구에게 추천해도 진입 장벽이 낮다고 느꼈고, 설 영화로 적합하다고 봤다”고 강조했다.
어떤 영화는 자극적이거나 불편한 지점 때문에 추천할 때 조건이 붙는데 ‘왕사남’은 연령·성별 상관없이 ‘한번 봐봐, 재밌어’라고 말하기 쉬웠다는 것. 이런 추천의 용이성은 자연스럽게 3인 이상 동반 관람을 늘리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롯데시네마에 따르면, 올해 설 연휴 ‘왕사남’ 동반 관람인 수는 평균 2.25명으로 연평균 1.8명을 웃돌았다. 서 팀장은 “설 연휴 기간 극장을 가보니 중장년 관객들이 5명, 8명씩 현장 구매하려다 매진 돼 돌아가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왕사남’은 역사 재현에 머무르기보다 ‘만약 단종이 왕이 됐다면 조선은 어떻게 바뀌었을까?’라는 만약에(If) 질문을 전면에 내세운 기획으로 내부 신뢰를 얻었다.
서 팀장은 “‘단종은 실패한 역사’라는 선입견 때문에 염려도 있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나면 분노·공감·검색 욕구를 만들어내는 지점이 분명했다”고 짚었다. 관객이 이미 결말을 알고 들어오더라도 극장 밖으로 나가서 계속 말하고 싶게 만드는 ‘말할 거리’와 ‘즐길 거리’를 남기는 게 중요했다는 것.
‘왕사남’ 흥행 비결의 또 다른 축은 캐스팅이었다. 정서연 사원은 “유해진 배우는 ‘엄흥도’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만큼 캐릭터와의 결합이 명확했다. 박지훈 배우는 극장 흥행 인지도는 크지 않았지만 ‘약한 영웅’ 등에서 연기력에 대한 신뢰가 이미 형성된 배우라 단종 역할에 오히려 기대가 컸다”라고 말했다.
조 인턴도 “유해진은 중장년층에 신뢰를 주고, 박지훈은 젊은층 인지도를 확보한 데다 최근 작품으로 연기 이미지까지 좋았다”며 “두 타깃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접점이 캐스팅에서 만들어졌고 결국 영화 흥행에 시너지를 냈다”고 덧붙였다.
‘만약에 우리’는 장르 자체가 불리했다. 서 팀장은 “코로나 이후 멜로가 ‘극장에서 굳이 안 봐도 되는 장르’로 인식되며 투자·개봉 모두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전략은 단순했다. 선택을 받게 만드는 장치를 가능한 많이 깔아두는 것.
정 사원은 극장 마케팅 관점에서 “티켓 프로모션을 장기적으로 운영하고, 굿즈도 6주차까지 이어가며 관객이 ‘쉽게 올 수 있는 이유’를 계속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만약에 우리’ 홍보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릴스(숏폼) 노출의 강도였다. “릴스로 거의 영화를 다 본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면이 많이 풀렸다. 이 지점은 내부에서도 논쟁이 있었지만, 결론은 지금 시장에서 필요한 방식으로 작용했다.
서 팀장은 “로맨스 영화는 ‘돈 아깝다’는 심리가 있다. 일단 관심을 끌어올려 극장에 오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마케팅팀의 판단으로 릴스를 다른 영화에 비해 많이 제작한 것은 맞다”고 했다. 다만 핵심 결말은 지키되 머무르게 만드는 장면을 촘촘히 배치해 궁금해서 보러 가게 하자는 접근이었다.
쇼박스는 2년 전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영화 ‘파묘’를 배급, 흥행한 전력이 있다. ‘파묘’ 역시 오컬트 장르라는 점 때문에 관객 확장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서 팀장은 “사극이나 멜로, 오컬트처럼 큰 성공을 기대하기 힘든 장르라고 해서 피하는 게 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관객이 어디에서 화제성을 느낄지를 더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사원 역시 “시나리오를 덮었을 때 ‘재밌었어 혹은 재미없었어’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극장 밖에서 같이 온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검색하게 만드는 영화가 흥행 성공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