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공시대상 2조->30조로 후퇴…"현실 안착" VS "정책 후퇴" 의견 분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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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별도 2조’ 계획서 ‘연결 30조’로 상향… 대상 기업 코스피 7% 수준
학계·컨설팅업계 “글로벌 정합성 고려해 적절” VS 시민단체 “그린워싱 방치”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관계부처, 유관기관 및 경제단체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20층 챔버 라운지에서 개최된 ‘제4차 생산적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박민석 기자 mins@)

금융당국이 발표한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 초안의 의무화 대상을 두고 시장 전문가들의 평가가 엇갈린다. 2021년 첫 논의 때와 비교해 자산 규모 기준이 대폭 상향되면서 이를 제도 안착을 위한 ‘현실적 조정’으로 보는 시각과 글로벌 흐름을 외면한 ‘정책 후퇴’라는 주장이 대립하는 양상이다.

25일 제4차 생산적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공개된 이번 초안은 2028년(FY27)부터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공시 의무화를 적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정부는 경제·산업 구조가 유사한 일본이 시가총액 3조엔(약30조원) 이상 기업부터 공시를 의무화한 점과 국내 대기업들이 2029년부터 EU 역외 공시 의무를 적용받게 되는 상황을 종합 고려해 문턱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초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30조원 이상 대형사부터 진입시키되 2029년부터는 자산 10조 원 이상 기업으로 대상을 넓히는 등 단계적으로 공시 의무를 강화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이번 로드맵의 핵심 쟁점은 공시 대상의 범위다. 2021년 1월 금융위가 발표한 ‘기업공시제도 종합 개선방안’에 따르면 당초 정부는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2030년 전 상장사까지 의무화를 확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 안으로 인해 2024년 결산 기준 2028년 공시 의무화 대상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58개 대형사로 좁혀졌으며 이는 코스피 상장사 중 6.9%에 불과하다.

학계에서는 '연결 기준' 도입이 갖는 실무적 무게감을 강조한다. 정준희 대구대학교 교수는 "2021년 당시 기준은 별도 재무제표 중심이었으나 이번 30조 원은 해외 자회사 데이터를 모두 포함하는 연결 기준이어서 기업이 체감하는 문턱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특히 "별도 기준으로는 자산 규모가 작은 지주사들도 연결 기준을 적용하면 곧바로 의무 공시 대상에 편입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국내 핵심 그룹사들은 모두 망에 들어온 셈"이라며 글로벌 투자자를 고려할 때 국제적 정합성 측면에서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법조계 역시 제도 연착륙을 위한 당국의 고심이 반영됐다고 본다.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유럽과 일본이 수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2028년 도입까지 일정이 매우 촉박하다"며 "수백 개 해외 종속회사 데이터를 일일이 산정해야 하는 연결 공시는 대기업조차 실무 인력이 부족해 당장 수행하기가 역부족인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번 안이 국제적 추세에 비해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상존한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사무총장은 "글로벌 공급망 관리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허리에 해당하는 기업들을 제외한 로드맵은 실효성을 스스로 깎아먹는 행위”라며 “대형사만 참여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됐고 중견기업들에 준비를 늦춰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도입 시점인 2028년에 최소 자산 10조 원 이상 기업부터는 의무화해야 일본 등 경쟁국에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선택적 정합성’ 문제도 지적됐다. 지현영 서울대 환경에너지법정책센터 변호사는 “정부가 일본의 3조엔 기준을 참고했다면서도 정작 일본은 국제 정합성을 위해 스코프3유예를 1년으로 잡은 반면 우리나라는 3년을 부여했다”며 “기업 편의에 맞춰 해외 기준을 취사 선택한 이번 로드맵은 녹색 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비전이 결여됐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천문학적 정책 자금이 투입되는 기후금융 계획과의 엇박자 문제도 거론된다. 정부는 2035년까지 790조원 규모의 기후금융을 공급하고 이 중 70% 이상을 중소·중견기업에 투입할 방침이지만 정작 이들의 데이터 공시는 의무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이 총장은 "공시 대상을 좁혀놓고 거대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정"이라며 "성적표(공시)도 받지 않고 대규모 장학금(기후금융)을 주겠다는 것은 결국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부추기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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