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돌아온 국립생태원 설계자…'주경야생'으로 국가생태 이끈다[CEO탐구생활]

이창석 국립생태원장 인터뷰

2013년 개원한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은 우리나라 생태정책 전반을 상징하는 기관이다. 기후위기 대응, 생태 연구·복원, 대국민 전시·교육까지 아우르는 생태원의 지휘봉을 쥔 인물은 이창석 원장이다. 2010년 건립 추진기획단장을 맡아 생태원의 탄생을 총괄했던 그는 개원 12년 만인 올해 다섯 번째 원장으로 임명됐다. 다음 달 취임 1년을 맞이한다.

'생태원 설계자'의 귀환은 단순 인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평가다. 개원 후 연구·전시 기능 등을 점차 확장해 온 생태원이 국가 생태정책을 견인하는 전문기관으로서 역할을 강화해야 하는 시점에서 누구보다 기관 탄생 배경과 존재 목적을 잘 아는 인물이라서다.

한국생태학회·한국복원생태학회·한국생물과학협회·동아시아생태학회연합 등 각종 생태학회장 이력과 200여 편의 관련 논문이 대신 말해주듯, 이 원장은 오랜 기간 생태 연구에 매진했고 학계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올해 서울여대 환경생명공학과 연구석좌교수 재직 중 생태원장에 임명됐다. 그럼에도 이 원장은 화려한 직함보다 '학자 정체성'을 앞세운다. 그는 자신을 "주경야생(晝經夜生) 원장"이라고 표현했다. 낮에는 기관 경영, 밤과 새벽에는 생태 연구·논문 발표 등 기관 전문성 강화에 힘쓴다는 의미다.

이 원장은 23일 생태원 사무실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생태원은 아직 신생기관이나 마찬가지"라며 "원장 업무를 마친 밤과 새벽에 생태학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연구해 직원들에게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고 연구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 등을 하고 있다. 취임 후 논문을 많이 썼는데, 개인의 논문을 넘어 직원들과 같이 쓰기도 하고 좋은 저널에 투고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생태원의 역할에 대해 이 원장은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위기에 과학적으로 대응하는 실질적인 정책 지원 기관"이라며 "단순 환경 보전 차원을 넘어 생태계 회복, 국민 안전, 지속가능한 국가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생태원장은 이러한 정책 정합성을 구현해내야 한다. 기후 대응, 생태 복원, 기술 혁신 등 국가의 여러 핵심 과제를 기관 경영에 녹여내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는 자리다.

이 원장이 단행한 조직개편은 이러한 배경과 맞닿아 있다. 핵심 정책 아젠다 실현을 위해 생태·기후의 상호작용 연구 및 정책대응 기능을 대폭 강화한 생태기후연구본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반 연구 활용을 위한 지능생태정보실을 신설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원장은 "생태기후연구본부는 국가 탄소중립 목표 실현에 요구되는 탄소흡수원 대책을 주도할 수 있는 조직"이라며 "기관장 직속의 지능생태정보실은 AX(인공지능 대전환) 전략 수립 등 데이터 기반 행정 및 정보보안 총괄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태원은 서천 갯벌을 매립해 국가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대신 갯벌을 보전하며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대안 사업으로 2007년 추진됐다. 심화하는 기후변화 대응 연구, 생태계 보전 중요성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교육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전문기관의 탄생 배경이다.

▲이창석 국립생태원장. (국립생태원)

이 원장은 생태원 건립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로 홍조근정훈장 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를 개인의 영예로만 여기지 않았다. 건립 추진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 공무원이 배제되자 "훈장을 받지 않을 테니 그 훈장을 해당 공무원이 받도록 해 달라'는 뜻을 정부에 전달한 것이다. 당시 행정안전부 직원은 "훈장은 패스가 안 된다"며 곤혹스러워 했지만 이 원장은 "나만 훈장을 받을 수는 없다"고 맞섰다고 한다. 결국 그 공무원은 별도 포상을 받게 됐고, 그제서야 이 원장도 훈장을 받았다.

이 원장은 "그 친구는 박사 학위를 가진 환경부 공무원이었는데 능력이 출중해 생태원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며 "그런데 나만 훈장을 받으면 그게 얼마나 꼴이 우습나"라며 당시 일화를 회상했다. 해당 공무원은 환경부의 한 산하기관장까지 오른 뒤 퇴임했다.

스스로에게도 굴곡이 없지 않았다. 생태원에 대해 누구보다도 속속들이 알았지만 초대 원장을 맡을 수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찬동자'라는 꼬리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이 원장은 "하천을 물길로만 보는 인식에 따른 오해"라고 설명했다. 학자로서 하천을 수생태계·수변생태계를 아우르는 복합 생태계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인데 정치적 프레임으로 연결됐다는 취지다. 이는 그가 생태원장으로 돌아오기까지 12년이 걸린 배경이다.

이 원장이 그리는 생태원의 미래는 단기 성과에 얽매이지 않고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굳건한 국가의 '생태정책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는 생태 복원의 방향도 과학에 기반한 '참조생태정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같은 복원사업을 해도 지역에 맞는 생태조건을 따져 진행해야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같은 사람을 만나도 누구에게는 편안하고, 누구에게는 불편한 사람이듯 식물도 원하는 장소가 있다. 그것을 '참조생태정보'라고 한다"면서 "같은 버드나무를 심어도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는 곳과 덜 흡수하는 곳이 있다. 제대로만 생태를 복원하면 결국 우리가 받는 혜택이 커지는데, 지금까지는 주관에 따른 복원사업이 많았다. 그건 복원이 아닌 구시대적 조경"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생태원이 중장기 성과에만 주력하는 것도 아니다.

올해 이 원장이 신설 개편한 생태기후연구본부를 통해 그동안 국가온실가스 인벤토리에 포함되지 않았던 수변식생의 탄소흡수원을 발굴했다. 정밀한 생태조사를 통해 제주 한라산에서 세계적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검독수리'의 국내 번식 둥지를 77년 만에 발견하기도 했다. AI 기반의 야생동물 종 분류 시스템을 통해 연간 150만 장의 사진 분석 시간을 511일에서 3.2일로 줄였다. 관련 분석 비용도 8790만 원에서 250만 원으로 대폭 절감하는 성과 등이 있었다.

이 원장은 "12년 전 '생태 복원 원리를 바탕으로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모델'을 지향했던 생태원 설립 철학이 이제는 실제 정책지원이 가능한 연구 성과로 구현되고 있다"며 "생태원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정책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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