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투는 단단했다. 단호하면서도 따뜻했고, 명료하면서도 섬세했다. 말끝마다 스며 있는 ‘강단’은 단지 강의실에서 다져진 것이 아니었다. 김 교수는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라임 등 사모펀드 사태 대응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 초기의 혼란까지 금융소비자보호 현장의 가장 복잡한 국면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소비자보호 기능이 대폭 강화된 시기, 그는 사상 첫 금감원 소보처장으로서 소비자보호 기준을 현장에서 세웠다.
법학·금융감독·정치를 넘나들며 경력을 쌓아온 그는 매 순간 다른 도전에 기꺼이 몸을 던졌다. ‘감독당국의 유리천장’을 처음으로 깨고, 금융소비자의 목소리를 정책 중심에 끌어올린 그는 언제나 조용한 개혁가였다. 제도보다 사람, 관행보다 상식에 천착한 그의 리더십은 여성이라는 이름을 넘어서 모든 리더가 새겨야 할 중요한 이정표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가장 선명하게 뇌리에 남은 것은 긴 시간 단련된 이의 하염없이 밝은 미소였다. ※대담 : 석유선 생활경제부장
4대 금융 女경영진 8.8% 불과...여성 열배 잘해야 남성과 동점
감독당국, 양성평등 점검하고 금융사는 구조적 장벽 손봐야

“여성은 열 배는 잘해야 같은 점수를 받는다.”
김은경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모의법정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여성 리더는 어떤 능력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바로 이렇게 말했다. 담담한 어조였지만, 그 한 문장에는 법학·금융감독·정치를 유유히 지나온 그의 삶의 노하우가 응축돼 있었다.
외대 출신 여성 교수가 금융감독원 핵심 보직에 오르기까지 가장 확실한 기반이 된 것은 그가 오랜 시간 스스로 축적해온 전문성이었다. 그는 연구실에서 10년 동안 136편의 논문을 쓰며 보험·소비자·금융법 분야를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그는 “말로 설득하려 하지 말고, 실력으로 설득해야 한다”면서 “사실을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감독행정에서도 모든 판단의 출발점은 전문성이다. 김 교수는 “전문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실력이어야 한다”며 “그래야 조직도 신뢰하고 상대도 설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융사고와 제도 변화가 겹친 국면에서 이 원칙을 더욱 분명히 세웠다. 금소법 시행 초기, 금융사와 민원이 동시에 쏟아지는 혼란 속에서도 그는 ‘법을 제대로 이해하자, 근거를 명확히 하자’는 기준을 흔들리지 않는 원칙으로 세웠다. 김 교수는 “소비자 보호 업무는 감정과 압력이 많은 분야여서 원칙이 흔들리면 판단도 함께 흔들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모펀드 사태부터 금소법 시행 초기의 혼란까지 연이어 대응해야 했다. 그는 “위기일수록 보고서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며 원자료를 직접 확인하고 실무자를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2020년 7월 라임펀드 분쟁조정에서 처음으로 민법상 ‘계약취소’ 조항을 적용해 원금 전액 반환 권고를 끌어낸 판단의 기반이 됐다. 법적 해석과 감독 실무를 함께 고려해야 했던 사안에서 그의 전문성이 실질적 결론으로 이어진 사례였다.
그는 여성 리더십이 감독 현장에서 발휘될 수 있는 강점도 분명히 있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금융소비자 보호나 분쟁조정처럼 섬세한 판단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공감 능력이 정책과 감독의 깊이를 더해주는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금감원에 출근한 직후 보수적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여성 리더로서 어떤 선택을 했냐고 묻자, “첫 번째 원칙은 학연·지연 배제였다”고 말했다. 이어 “출신 배경을 먼저 묻는 문화는 능력 있는 사람을 좌절시키고 조직을 폐쇄적으로 만든다”며 실력과 성과 중심의 기준을 세우려 했다고 덧붙였다.
그가 강조한 또 다른 변화는 ‘뒷말 문화’의 차단이었다. 김 교수는 “평판을 귓속말로 전하는 관행에 흔들리지 않으려 했다”며 “평가는 공식 절차로 이뤄져야 하고 개인적 호불호는 배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 리더라고 해서 부드러운 문화만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정성과 투명성을 기준으로 삼으면 조직문화는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는다”고 강조했다.
이 원칙은 후배 여성 인재 발탁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가능하면 여성 인재에게 기회를 주려 했지만, 지원자 풀이 적어 늘 아쉬움이 있었다”고 했다. 잠재력이 보이는 인재에게는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도 했다. 그는 “한 번의 실수로 끝나지 않도록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것이 선배 세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여성 후배들에게 “혼자 싸우려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오고, 동료가 생기면 변화의 속도와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금융·법학·정치를 거쳐온 그의 경험에서 나온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최초라는 자리에는 항상 고립감과 외로움이 따른다”며 “앞서 걸어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더 많은 동료가 필요하다”고 연대 의식을 강조했다.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가 발간한 ‘2024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이들 금융사의 경영진 중 여성 비율은 평균 8.8%에 불과하다. 인력 구조는 빠르게 변해왔지만, 임원 층은 여전히 남성 중심이다.
그는 “지금 임원 세대는 애초에 여성이 거의 진입하지 못했던 시대”라면서도 “ 이사회와 임원 선임 과정에서의 구조적 장벽을 손대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도 꼭대기의 유리천장은 그대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 시스템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사회 추천 과정의 투명성, 승진 후보군의 양성평등, 조직문화 개선 여부 등을 감독 당국이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숫자만 늘려서는 변화가 지속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금융회사 내부의 변화도 필요하다. 그는 “한두 명의 ‘보여주기식’ 임원에서 멈추면 조직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중간 관리자와 실무 책임자 단계에서부터 여성 인재 풀을 두텁게 키우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여성 리더가 조직 일부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려면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감독 현장을 떠난 뒤 그 앞에 놓인 다음 과제는 전혀 다른 무게였다. 2023년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시기, 그는 예상치 못한 공세의 중심에 섰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던 그는 잠시 숨을 고르며 “어느 날은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했다. 몸이 굳어버렸고 16일 동안 버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강단으로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비난받을까 두려워 시선이 흔들렸지만, 학생들은 그런 기색 없이 나를 그저 선생으로 대했다”고 털어놨다.
이 시간을 지나며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그는 “그 일을 겪고 나니 앞으로는 공익적 역할에 더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면서 “겪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겪고 나니 성숙해졌고 마음이 훨씬 넉넉해졌다”고 덧붙였다.
그의 다음 목표는 분명하다. 김 교수는 “연구와 감독에서 얻은 경험을 정책으로 실현하고 싶다”며 “금융·경제 시스템을 시민 중심으로 다시 설계하는 일이라면 어디서든 기여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본 기획 시리즈는 ‘한국여성경제인협회’ㆍ‘여성금융네트워크’와 함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