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업계에서 여성으로는 최초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그는 인터뷰 내내 그 수식어가 왜 당연한 지를 증명해 보였다.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조직 문화와 ‘여성은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돌파한 그의 행보는 단순한 경력의 나열을 넘어선 도전의 기록이었다.
1986년 체이스맨해튼은행 서울지점에서 금융 커리어를 시작한 박 전 대표는 조흥은행, 삼성화재를 거치며 리스크 관리와 자산운용 전문가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했다. 2004년 KB국민은행에 합류해 자산관리(WM)본부장,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 여신그룹 부행장 등 핵심 보직을 두루 섭렵하며 역량을 입증했다.
KB증권 CEO로 재직하며 수익성과 안정성을 업계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렸고, 숫자로만 평가받는 냉혹한 시장에서도 ‘사람 중심 경영’으로 실적과 신뢰를 동시에 증명했다. 인터뷰는 두 시간 가까이 됐지만 그의 집중력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박 전 대표는 후배들에게 “모든 걸 다 잘하려 하지 말라”는 진솔하고 현실적인 메시지로 더 깊은 울림을 줬다. ※대담 : 석유선 생활경제부장

“은행은 고객이 찾아오는 ‘농경사회’, 증권은 고객을 찾아 나서는 ‘수렵사회’다.”
박 전 대표의 말처럼 증권업은 보수적인 금융권 중에서도 예금과 대출을 기반으로 하는 은행보다 개개인의 역량 편차가 크다. 특히 IB(투자은행) 분야는 금융 상품의 구조화, 딜 소싱, 리스크 관리에 이르기까지 고위험 고수익을 겨냥한 전문성과 결단력을 요하는 최전선이다.
이곳에서 박 전 대표가 KB증권 CEO 자리에 오르자 업계에서는 ‘증권사의 터프한 문화를 여성이, 그것도 은행 출신이 이끌 수 있을까’라는 두가지 의문이 동시에 제기됐다. 그는 이 질문에 ‘실력’으로 보여줬다. 직원들과는 ‘동네 아줌마나 혹은 누나’처럼 친근하게 소통했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철저하고 디테일하기로 유명했다. 스스로 치밀하고 원칙에 철저했다.
박 전 대표는 “긍정 에너지가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한다”며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 위기의 순간을 이겨내는 핵심 역량”이라고 강조했다.이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음 도전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수”라고 했다. 그는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며 인적네트워크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화가 났을 땐 그날 밤엔 결정을 내리지 않고 하루를 참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본다”며 감정과 결정을 분리하는 지혜도 설명했다.
박 전 대표는 여성 리더십 확대가 단순한 성평등의 문제를 넘어, 조직의 생존과 성과를 위한 전략적 선택임을 역설했다. 조직 내 다양성 확보를 위해 여성 임원 비율이 최소 30%는 돼야 한다고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그는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모여야 조직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미생물 다양성 지수의 논리와 같다”고 했다.
특히 여성 인력의 강점으로 뛰어난 멀티태스킹, 커뮤니케이션, 집중력, 프레젠테이션(PT) 능력을 꼽았다. IB 분야에서 프론트 라인이나 채권운용, WM 등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여성은 종종 재무책임자(CFO), 전략, IB 같은 ‘핵심 보직’에서 배제되며 ‘유리천장’이 아닌 ‘유리 벽’에 갇히는 현실도 지적했다.
박 전 대표는 “현재 각 기업별 여성 임원 한두 명은 항상 여성이 맡던 자리”라면서 “여성들이 전략·재무·IB 같은 핵심부서에서 경험을 쌓아 주요 보직의 임원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최근 젊은 여성들이 전략·재무 등 핵심 부서로 배치되면서 그들이 부장, 임원이 될 시점엔 주요 보직을 거친 여성 임원이 더 늘 것”이라면서 “그 사이 공백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언급했다.

박 전 대표는 여성 리더의 배출과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CEO의 마인드’라고 단언했다. 제도나 시스템만으론 한계가 있기에 실질적 의지를 가진 리더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통찰이다. 그는 “나 또한 잘했다는 평가를 받을지 모르지만,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없었다면 부사장이나 부행장에서 끝났을 것”이라며 “여성 인재를 발굴하고 주요 자리에 앉히는 CEO의 통찰력이 가장 중요하다”고도 했다.
이러한 통찰은 박 전 대표가 ‘여성 멘토’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윤 전 회장을 자신의 멘토로 삼았던 이유다. 윤 전 회장은 그에게 ‘여자라서 뭘 잘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자본시장과 IB, 웰스 매니지먼트가 KB금융의 핵심축이 될 것이니, 증권이 그 축이 되도록 발전시키라’는 미션을 내렸다. 그룹의 미래에 대한 명확한 지령은 박 전 대표의 리더십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는 단순히 외형적 성장을 넘어 ‘그룹 내 계열사 간 시너지 확대’에 집중해 은행, 보험 등 그룹사와의 협업을 통해 WM 부문의 성장에 기여했다. 이것이 KB증권을 현재 그룹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격상시킨 결정타가 됐다.
그는 조직 문화 혁신에도 힘을 쏟았다. 여성 인재를 적극 발탁하기 위해 부서장 후보군(풀)에 항상 여성의 이름을 올렸다. 박 전 대표는 “언제든 여성이 부서장에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 했다”며 “이런 시도가 조직 내 수평적 문화 확산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워킹맘에게 완벽주의를 내려놓으라는 당부도 했다. 그는 “많은 여성 직장인이 모든 걸 완벽하게 하려는 강박이 있다”면서 “포기할 건 포기하고 남는 시간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라”고 조언했다. 이런 생각은 경영 철학인 ‘자원 배분’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회사 자원이 100이라면 어디에 얼마를 배분하느냐가 경영의 핵심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배분하는 게 리더십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집안에 먼지가 보이면 그날은 늦게 들어가라. 먼지는 내일도 거기 있다”는 현실적 해법을 제시하며 유쾌하게 웃었다.
CEO의 자리를 내려놓은 후, 그의 시선은 사회공헌 영역과 이사회 활동으로 향했다. 박 전 대표는 현재 쿠팡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이자 SK증권 이사회 이사를 겸하고 있다. 그는 특히 쿠팡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분기에 한 번하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상시적인 사회공헌 아이템들을 찾고 있었는데 그런 취지에 부합한다”면서 “금융, 언론, 학계, 청년 활동가 등 다양한 위원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종업계 후배 여성을 위한 멘토 역할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표는 “SK증권의 여성 임원들과 주기적으로 밥을 먹으면서 애로사항도 듣고 있다”며 “기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지속해서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금융투자업계에 꾸준히 기여하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조용하지만 견고한 긍정 에너지, 오래 기억될 ‘박정림다움’이었다.
※본 기획 시리즈는 ‘한국여성경제인협회’ㆍ‘여성금융네트워크’와 함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