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 올인
◇임상시험 증가세… 제약사, 활발한 신약 개발 행보 =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2013년 임상시험계획 승인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약사들의 임상시험은 총 227건이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2년 208건에서 9.1% 증가한 규모다.
임상단계별로도 2010년 이후 1상에서 성과를 보였던 개발 의약품들이 3상으로 진입하면서 최근 4년간 3상 시험도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31건, 2011년 41건, 2012년 47건, 2013년 58건 등이다. 3상 시험은 약의 효능을 최종 점검하는 단계다.
임상시험 건수가 늘고 있다는 것은 제약사들이 그만큼 신약 개발에 많이 나서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처음부터 대규모 자금과 긴 시간이 필요한 신물질 개발보다는 성공률이 높은 개량 신약 개발에 주로 나서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의 15.8%에 해당하는 1156억원을 R&D에 투자한 한미약품은 신약 개발에도 두각을 보이고 있는 제약사 중 하나다. 한미약품은 자체 개발한 개량 신약인 역류성식도염치료제 ‘에소메졸캡슐’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시판 허가를 받아냈다. 이는 국내 개량 신약 중 최초의 사례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자체 개발한 개량 신약으로 미국 등 선진국 진출에 성공했다는 점은 국내 업계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한미약품은 폐암환자를 위한 표적항암제, 당뇨약 등 20여종의 치료제를 국내외에서 개발하고 있다. 표적항암제 HM61713의 경우 지난 5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임상종양학회에서 발표돼 눈길을 끌었고, 월 1회 투약을 목표로 개발 중인 당뇨치료제 ‘LAPSCA-Exendin4’는 미국 2상 임상에서 기존 치료제 대비 면역원성 반응이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동아에스티도 자체 개발한 슈퍼박테리아 항생제 신약 ‘테디졸리드’로 미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FDA 승인을 받아 현지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테디졸리드는 메타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 등에 의한 감염을 치료하는 항생제로, 동아에스티는 2004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2006년 임상을 완료했다. 동아에스티는 향후 캐나다와 유럽에서도 테디졸리드의 신약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바이오’ 영역에 들어선 제약사들 = 바이오 의약품 개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제약사도 늘고 있다. 생물체의 세포, 단백질, 유전자 등을 원료로 하는 의약품인 만큼 병을 일으킨 원인물질을 찾아 치료해 효과가 좋고 부작용도 적은 것이 장점이다.
녹십자는 최근 식약처로부터 자체 기술로 개발한 항암보조제 ‘뉴라펙’의 시판 허가를 받았다. 이 약은 기존 보조치료제와 달리 항암제 투여 24시간 후에 1회만 투여해도 효과가 나타나 약물의 몸속 잔존 시간을 늘렸다. 녹십자는 뉴라펙을 내년 초 출시하고, 이후 해외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도 녹십자는 유방암·위암 표적치료제 허셉틴의 바이오베터(특허가 끝난 바이오신약과 유사한 효과가 나게 제작한 바이오시밀러를 개량한 약품) ‘MGAH22’, 대장암 표적치료제 얼비툭스의 바이오베터 ‘GC1118A’, 간암 유전자치료제 ‘JX-594’ 등의 항암제와 적혈구 감소증 치료제 ‘GC1113’ 등의 항암보조제를 개발 중이다. 녹십자 관계자는 “회사 매출의 70% 비중을 차지하는 혈액제제 등 주력제품들이 바이오 의약품에 속한 만큼, 바이오 분야에선 국내 제약업계의 선두주자”라며 “향후 해외에서도 바이오 의약품 진출을 가속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아에스티도 2003년부터 개발에 착수해 2007년 임상을 마무리한 항암보조제 ‘듀라스틴 주사액’의 시판 허가를 받았다. 녹십자 뉴라펙과 같은 호중구감소증치료제로, 복용 편의성과 면역반응 유발의 가능성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신약에 속하지는 않지만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R&D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의 특허 기간이 끝난 뒤 이를 본떠 만든 비슷한 효능의 복제약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세포를 통해 제조되는 만큼 보통 제네릭 의약품과는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 업체 중에서도 대표적이다. 2012년 세계 최초로 항체를 이용한 바이오시밀러로 ‘램시마’의 시판 허가를 받은 데 이어 올 초에도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인 유방암치료제 ‘허셉틴’의 시판 허가를 받았다. 이 밖에도 대웅제약, LG생명과학, 종근당 등의 제약사가 최근 임상 시험을 진행하는 등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제약사 관계자는 “삼성그룹에서도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을 통해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뛰어드는 등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며 “2~3년 후엔 전 세계 바이오 의약품 비중이 전체의 50%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로 잠재성이 큰 시장”이라고 말했다.
◇‘희귀 의약품’ 개발도 속도 = 의료상 필요성이 크지만 아직까지 R&D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양이 적은 ‘희귀 의약품’도 국내 제약사들이 바라보고 있는 분야다.
녹십자는 지난 27일 유전자 재조합 B형간염 항체치료제인 ‘헤파빅-진’의 임상 2상 시험계획을 식약처로부터 승인받았다. 회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 재조합 방식의 B형간염 면역글로불린 제제의 상용화는 성공한 업체가 없어 이번 개발이 성공하면 세계 최초의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헤파빅-진은 희귀 의약품이다. 미국 FDA와 유럽의약국(EMA)로부터 간 이식 환자의 B형 간염개발 예방을 적응증으로 희귀 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희귀 의약품 지정을 받으면 미국의 경우 임상 시 최대 50%의 세금 감면, 신속한 심사, 허가비용 감면 등의 혜택을 준다.
메디포스트의 미숙아 기관지폐이형성증 예방 치료제 ‘동종 제대혈 유래 중간엽줄기세포 주사제’도 ‘개발 단계 희귀 의약품’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현재 메디포스트는 삼성서울병원, 아산병원 등에서 2상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의료업계 관계자는 “개발 비용이 많이 드는 바이오 의약품은 물론, 희귀 의약품까지 만드는 등 국내 제약사들의 기술력도 많이 향상된 부분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성공률이 높은 개량 신약에 초점을 맞추는 제약사들이 대부분이어서 앞으로 신약 개발 범위를 넓혀야 포화상태인 제약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