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표 국회의원ㆍ새누리당
또 가난했던 우리 젊은 시절에는 ‘재건 데이트’라는 말이 유행했었는데, 돈이 없으니까 연인들이 만나면 무작정 손잡고 걷는 것을 일컬었다. 그만큼 청춘 시절의 데이트는 만나기만 해도 좋았고, 나아가서 낭만적 미래를 꿈꾸게 되는 과정으로도 여겨졌었다.
그러나 낭만성의 뒤에 가려져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데이트가 연인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 성장과정과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 차이와 이로 인한 갈등이 존재하고, 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고 싶은 욕구와 질투 감정이 표출된다. 심한 경우 이러한 감정이 폭력과 결부되면서 나타나는 것이 ‘데이트 폭력’이다.
과거 데이트 폭력은 낭만성에 묻혀 있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폭력의 범주로 다루어져서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으로 연구가 시작되면서 데이트하는 연인간의 폭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강도가 높고, 광범위하게 일어난다는 것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미국의 경우 연인들의 3분의 1이 데이트 폭력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우리나라의 경우도 연구자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저 11.6%에서 최고 52.4%의 연인들이 폭력을 경험해서 미국과 비교해서도 그 범위는 결코 작지 않다.
특히 연인간의 폭력이라고 해서 그 정도가 약할 것이라고 보면 안 된다. 이화영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소장이 최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 피해 여성들은 폭행, 폭언과 협박, 납치 및 감금, 강간, 스토킹 등을 겪었다. 특히 길거리에서 20분간 몸싸움을 했는데도 이를 본 누구도 신고해주지 않았고, 경찰에 신고했더니 조사만 받고 그냥 풀려났다.
데이트 폭력은 사적 영역이라는 인식 때문에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부간 폭력이나 아동학대 폭력 등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겨지는 것과 비교하면, 데이트 폭력은 아직 그 심각성이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데이트 폭력 가해자가 남성만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가해자의 성차(性差)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성차가 없거나 오히려 여성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그 해석이 곤혹스럽지만, 일반적으로는 폭력의 강도는 남성이 세고, 여성의 경우 욕설, 폭언이나 물리력 행사인 경우 자기 방어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경기도 경찰청은 매년 데이트 폭력에 관한 통계를 따로 뽑고 있는데,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8개월 동안 수원남부경찰서 등 10개 경찰서에 접수된 데이트 폭력 건수는 453건으로 이 가운데 83건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입건되었다. 이 통계의 문제점은 데이트 폭력을 순수한 폭력행사로 국한하고 있는 점이다.
데이트 폭력은 강간, 강제추행, 상해, 감금, 폭행, 협박, 스토킹, 욕설, 폭언, 멸시 등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고, 형법상의 강간죄, 모욕죄, 협박죄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각종 특례법이 적용된다. 스토킹은 주로 경범죄 처벌법에 의해 규율된다.
또 데이트 폭력이 연인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사실을 은폐하려고 하고, 가해자들은 그 뒤에 숨어 축소, 왜곡하려 하는 점을 감안하면, 경찰에 접수된 사건은 일부분일 수밖에 없다.
데이트 폭력이 왜 일어나고, 이렇게 빈발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는 가부장적인 사회가 주는 영향, 가정폭력의 경험을 통한 대물림, 학교폭력과의 연관성, 유전적인 기질, 음주 등 다양하다. 또 데이트 폭력은 연인이라는 특수 관계로 인해 지속성을 갖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데이트 폭력을 어떻게 예방하고, 2차 3차 피해를 막으면서 어떻게 정상적인 연인관계로 발전해 나아가게 할 것인지에 대한 프로그램들이 사실상 전무하다. 데이트 폭력이 개인이나 사회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에 대한 고려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육부, 법무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이 데이트 폭력 예방대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국회에서도 이에 대한 지원 방안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