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년규 미래산업부장
과제 내용이야 추상적이고 전문적인 단어가 들어가 이해하기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SW를 키워 IT강국을 더욱 강하게 키워 보겠다는 의지는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들 과제가 발표된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는 당시 국정을 사로잡던 진대제 정통부 장관, 오명 과기부 장관, 윤광웅 국방부 장군 등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SW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줬다. 물론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함께 했다.
그로부터 9년이 흘렀다. 지난 23일 ‘SW중심사회’라는 어젠다가 언론에 집중 조명됐다. 이번 장소는 판교 테크노밸리였다.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의 일원인 최양희 미래부 장관이 창조경제의 결과물을 내놓기 위한 청사진으로 SW를 제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자리에서 교육부, 산업부 등 각 부처와 협의를 통해 7가지의 세부적 추진 전략도 내놓았다.
9년이란 세월의 차이를 두고 발표된 이들 두 개의 국정방향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선 용어가 세련되고, 내용이 몇 가지 추가돼 업그레이드됐다. 시대 변화에 따른 플랫폼도 좀 바뀌었다. 2005년에는 온라인이 사회 깊숙이 파고들면서 변혁을 맞을 때였다. 지금은 모바일로의 환경변화가 급격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에 맞게 옷을 갈아입었다.
9년 전에도 SW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당시 SW육성정책을 발표했을 것이다. 당시 진대제 장관은 “SW는 미래 성장동력”이라고 표현했다. 행사장에 있었던 오명 장관 역시 국내 ICT를 이끈 주역이었다.
두 개의 정책방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인력양성과 산업육성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보면 별반 달라진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SW중심사회’라는 용어를 써 가며 9년 전 정책과 유사한 SW육성방안을 왜 발표했을까? 답은 쉽게 구해진다. 2005년 제시한 정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발표 내용대로 인재를 육성하고, 산업을 지원했다면 우리나라 SW산업은 이미 세계의 선두자리에 있을 것이다. 당시 정책 입안자들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자부심을 갖고 대답하기는 힘들 것이다.
사실 SW육성 정책은 9년 전에만 발표된 게 아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컴퓨터가 보급된 2000년대 초부터 거의 해마다 SW산업 육성이라는 제목이 쏟아져 나온다. 모두 서랍 속 정책에 불과했던 것이다.
선거 때마다 “공약(공약)대로만 된다면 한국사회는 이미 천국이 됐을 것”이라는 말이 돌듯, 정책도 마찬가지다. 번지르르하게 때깔만 좋을 뿐, 몇 달 지나면 입안자조차 기억 못하는 게 수두룩하다.
이번 SW육성정책도 발표 내용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선 10년 후 구글과 맞서는 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 20년 후에는 전 세계 ICT의 주요 흐름의 중심에 서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2기 경제팀에서 SW중심사회 깃발을 들고 갈 최양희 장관은 컴퓨터공학의 전문가다. 누구보다 SW의 중요성을 잘 알 것이다. 그래서 SW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를 만들어 보고자 어젠다를 제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장밋빛 제시만으론 현실은 움직이지 않는다. 자본이 지배하고, 다른 산업군, 업체와의 경쟁이 벌어지는 산업현장은 전쟁터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치맛바람 또한 ‘SW교육=창의성’이라는 정부의 구상과는 거리가 멀다. 거시적 방향에서 SW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벌써 현실과 괴리된 방안이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질타를 받더라도 해 보겠다는 의지에는 박수를 보낸다. 일회성의 입에 발린 공염불 정책이 아닌, 작지만 SW생태계 환경을 조성해 주는 실행이 뒤따라 준다는 조건에서다. 그것도 꾸준히.
문제를 파악하는 것과 해결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지혜와 지혜로운 인생도 크게 다르다. 문제를 파악만 하고 거기서 그치는 인생은 누구나 할 수 있다. 2005년, 2014년에 이어 또 몇 년 후의 데자뷰는 절대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