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입김 세지자 ‘차선책’으로 자율협약… 중소업자 입장 반영은 아직 ‘부실’
그동안 적합업종 지정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던 국내 중소기업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정 과정이 까다로워진 적합업종을 자진 철회하고, 대기업들과 자율 상생협약을 맺는 ‘고육지책’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모습이다.
18일 동반성장위원회에 따르면 전국혼인예식장연합회는 지난 17일 아워홈, 한화H&R, CJ푸드빌과 ‘예식장업 동반성장을 위한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11월부터 4번의 조정협의체가 진행된 지 약 8개월 만이다. 특히 예식장업연합회는 이번 자율협약을 체결하며 적합업종 신청도 자진 철회했다.
예식장업연합회 양명영 회장은 “혼인 인구감소, 예식장 과다공급 등 중소 예식장이 대단히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중소 예식장의 최소한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 중소기업과 차별화된 서비스, 영업방식을 통해 공정 경쟁을 하기로 한 대기업 결정이 동반성장의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자율협약은 CJ푸드빌 등 대기업 3사가 협약 체결일로부터 향후 3년간 3개 이하로 신규 예식장 출점을 자제하기로 한 것이 골자다. 연 1개로 신규 출점을 자제하면서 중소 예식장에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한화H&S 측은 또 예식장업연합회가 요청할 경우 중소기업과 공동 마케팅, CS 위탁교육 지원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동반위는 이와 관련해 1년마다 이에 대한 준수 현황을 확인키로 했다.
중소 커피업계도 지난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프랜차이즈 대기업들과 자율 상생협약을 맺고 적합업종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협약에 따라 스타벅스, 커피빈 등 8개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상생발전기금을 조성해 중소기업들을 위한 전문교육, 식자재 구매협력, 해외시장 진출 등에 협력기로 했다.
이 같은 중소기업들의 적합업종 자진 철회, 대기업과의 자율 상생협약 등은 외관상으로 대ㆍ중소기업 간 아름다운 상생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적합업종에 대한 대기업들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적합업종 지정이 까다로워지자 어쩔 수 없이 고육지책으로 자율협약을 선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소기업 한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 역차별 등을 고려하겠다는 동반위의 ‘적합업종 개선안’을 보더라도 대기업들의 입김이 세진 것은 사실”이라며 “중소기업들 입장에서도 과거처럼 적합업종 지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위기감이 감돌고 있어 차선책으로 자율협약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과 자율협약 맺더라도 중소기업들의 입장 반영이 여전히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식장업연합회 김선진 사무국장은 “사실 이번 자율협약은 중소 예식업자들의 입장이 많이 반영되지 못해 유감스러운 부분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협의 과정에서 대기업들이 잘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호텔형과 중소 예식장들의 건수형(결혼식, 식사가 분리된 보편적인 방식) 분야를 분리해 운영하자고 요청했지만 모 대기업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대기업이 건수형까지 진입을 확대하게 되면 중소 예식장은 잠식 당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