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문화예술인가. 그렇다. 동그란 말 주머니 안의 언어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상징체계의 만화는 그 자체의 고유한 예술형식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대중의 저급문화로 치부돼 그리 대접받지 못했다. 국내에 제대로 된 만화비평 문화가 정립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비평 문화가 발달한 프랑스에서는 명망 높은 지성인들이 만화를 비평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라캉이 그랬고, 데리다가 그랬다. 철학자 자크 라캉은 만화비평에 대해 “만화가 단지 시각세계에 머물러 재미와 흥밋거리로만 전락하는 것을 억제하고, 당당히 예술의 길로 진입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학평론가 故김현씨는 “만화도 중요한 문화적 장르이며, 그것은 그것대로 올바로 이해돼야 한다”며 “만화도 때로는 엄숙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만화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나 학문적 연구, 그리고 비평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만화비평의 시작은 권구현의 ‘신문삽화 만평(1927)’으로, 주로 일간지에 연재되던 만화를 논했다. 1950년대에는 만화가 김성환이 한국 만화사 집필과 함께 소극적인 만화비평을 했다. 1990년대에 들어 한국만화평론가협회와 한국만화학회가 만화를 주제로 평론, 역사문화 등을 다룬 20여권의 책을 연이어 출간, 만화비평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만화를 대신하는 문화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만화 출판시장이 위축되면서 만화비평도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만화비평 전문지가 최근 창간됐다. 만화문화연구소 엇지가 발행하는 계간지 ‘엇지’는 상명대학교 만화학과 외래교수인 박세현 편집장 등 13명의 만화평론가와 연구원들이 만드는 전문 만화비평지다. 만화를 문화로 이해하지 못하고 상품으로만 이해하는 사회의 시선에 맞서기 위해 탄생했다. 박세현 편집장은 창간호를 통해 “전례 없는 웹툰의 호황시대에 오히려 비평의 초심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소박한 바람에서 창간을 실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엇지’의 부흥을 위해서는 출판만화의 활성화가 전제돼야 한다. 이를 위한 시작으로, 만화인들의 모임인 우리만화연대와 출판사 휴머니스트가 어른을 위한 만화잡지를 표방한 ‘월간희망 만화무크 보고’를 지난 3월 창간했다. 이 외에도 만화의 발전을 위한 작은 움직임이 여럿 포착된다. 2007년 창간된 ‘살북(Sal)’, 아트북 형식으로 제작된 ‘쾅’, 문예만화를 표방한 ‘이미지 앤 노블’ 등의 종이 만화잡지가 그 예다.
‘보고’는 편집자 서평을 통해 “90년대 만화 잡지의 영화를 부활하려는 복고의 시도가 아니라, 건강한 만화 생태계를 위한 미래 실험”이라며 “만화에 대한 왜곡된 편견과 맞서 만화에 대한 담론을 만들고 소통하며 만화 발전에 대해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