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인간은 없다. 그러나 완전한 무대를 향해 달리는 한 배우의 모습은 아름답다.
충무아트홀이 개관 10년을 맞이해 야심차게 제작한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매 회 놀라운 에너지를 펼치고 있는 배우 한지상(32)을 최근 서울 충무아트홀 공연장에서 직접 만났다.
“순간 몰입을 하고, 극에 푹 빠져있어서 많이 지쳐있는데요. 지친 저의 모습에 취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실제로 에너지가 소진되기도 하는 한편, 지친 저의 모습이 부정적으로 다가오진 않아요.”
이번 뮤지컬에서 한지상은 시체 각각의 몸을 접합해 완벽한 군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빅터 프랑켄슈타인(유준상ㆍ이건명ㆍ류정한)의 제1의 조력자인 의사 앙리 뒤프레 역을 맡았다. 극 중 프랑켄슈타인과 뜻을 같이 하는 앙리는 사형 위기에 처한 그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놓았다.
결국 그의 몸마저도 생명부활을 위한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에 쓰이고, 결국 앙리는 괴물로 재탄생해 인간에게 철저히 외면 받은 채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나간다. 이로부터 주인공 두 사람의 비극과 반전은 본격화한다.
“왕용범 연출님이 제겐 ‘괴물연기’를 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괴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과연 괴물다운 게 뭘까’라고 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괴물의 모습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한지상은 왕용범 연출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캐릭터 해석을 위해 고민하고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그는 극 중 앙리에 대해 “섹슈얼적인 측면은 아니지만, 친구 이상으로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좋아하고 우러러 봤다”고 했다. 이 같은 까닭에 신념을 같이한 친구로부터 배신당한 앙리의 처지는 극의 비극성을 더욱 강화시켰다.
“‘프랑켄슈타인’에는 고유의 그로테스크(Grotesque)한 분위기가 있잖아요. 연습 때부터 왕용범 연출님도 많이 우셨고, 배우들 모두가 그랬어요. 대본에 이입돼 많이 젖어있었죠. 저 역시 하루종일 연습하며 울부짖고 난 다음, 집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가슴이 한동안 먹먹하곤 했답니다.”
여기에 한지상은 특유의 호흡 조절을 가미해 관객으로부터 연민을 이끌어냈다. 배우 스스로도 이 점에 동의했다.
“맞아요. 제 괴물은 소위 오글거리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숨의 괴물’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숨을 많이 넣어 캐릭터의 생동감을 살렸어요. 또 하나, 호흡이란 관점에서 체력을 이야기 하고 싶어요. 넘버 ‘난 괴물’도 그렇고, 이번 ‘프랑켄슈타인’에는 소위 빡빡한 장면이 많지요. 전작인 뮤지컬 ‘완득이’에서도 마찬가지로 느꼈지만, 호흡 조절에 실패하면 3~4분의 노래를 버틸 수가 없더라고요. 각 신(Scene)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원천은 바로 호흡 안배였죠. 특히 이번 괴물 연기에는 그 호흡 증감의 차이를 대폭 키웠습니다.”
이는 더블 캐스트인 박은태와 차별점으로 느껴지게 했고, 저마다 다른 캐릭터의 표출은 작품을 찾는 관객의 입맛을 골고루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를 표현해내는 배우의 입장에서 한지상은 ‘프랑켄슈타인’의 연출진과 출연진의 고충도 털어놨다.
“박은태 형 등도 말했듯, 특히 이번 ‘프랑켄슈타인’은 저희 모든 출연진이 정말 자타공인할 정도로 쏟아내는 에너지가 남다릅니다. 객관적으로 소위 기가 빨리더라고요. 객석에 계신 분들도 고스란히 그 에너지를 받아 평가해주시는 것 같아요. ‘프랑켄슈타인’ 속에서 단순히 삶과 죽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끼리 극한의 갈등을 해야 하는 작품에서 처절함, 그 밑바닥의 감정과 만나고 있죠.”
배우들의 열정만큼 관객 만족도 역시 높은 ‘프랑켄슈타인’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동명의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하면서 국내 관객의 입맛에 꼭 맞춘 극적 구성과 요소를 갖췄으며, 국내 창작뮤지컬을 한 층 업그레이드시킨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프랑켄슈타인’의 구성과 배치는 어딘가 모르게 라이선스 흥행 대작의 면면을 떠올린다는 평도 잇따른다. 한지상은 주연 배우로서 자신의 견해를 드러냈다.
“배우로서 작품이 잘 인정받아서 좋지요. 창작뮤지컬이라고 해서 선입견을 갖고 봐주지 않았으면 하고요. 분명히 우리나라 대중이 좋아하는 뮤지컬의 스타일과 기호가 있고, 그것이 담긴 뮤지컬이 많이 흥행해왔어요. 그런 코드가 담겼다고 라이선스 작품은 박수를 쳐주셨으면서, 창작극이란 이유만으로 판가름 되는 식의 잣대는 개인적으로 원치 않아요. 우리나라 대중이 좋아하는 보편적인 잣대 위에 분명히 ‘프랑켄슈타인’만의 특별한 개성이 있어요. 그게 공존하고 있어서 지금의 호평이 따르고 있고, 그 점이 고무적인 것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늘 현재의 한 가지에 집중한다는 그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작품과 캐릭터의 지점을 온전히 이해한 채, 우뚝 서 있는 모습이었다. 이처럼 작품뿐 아니라, 그가 배우로서 가진 외형조건을 향한 외부의 평가에 대해서도 흔쾌히 입을 열었다.
“괴물을 떠나서 저는 뮤지컬 공연, 특히 대극장 공연을 하기에 그렇게 이상적인 사이즈는 아닐 수 있어요. 그것은 제게 뛰어 넘어야 될 숙제이자, 난관입니다. 그 이상의 에너지를 보여줘야만 하는 것이죠. 남들은 185cm가 넘기도 하고, 그 체력으로 무대에 서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저 같은 체격도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의 영웅이 될 수도 있어요. 제 체구 안에 에너지는 공평할 수 있거든요. 제 진심을 저만의 에너지로 채우고자 해요. 더 하면 돼요. 저만의 괴물스러움을 이용하는 것이죠. 물론, 제 골격의 범위 안에서도 가능한 변화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의 영웅, 록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유다, 뮤지컬 ‘서편제’의 동호, 뮤지컬 ‘대장금’의 중종 등 이외에도 여러 작품에서 정반대의 캐릭터를 소화하는 행보를 이어온 한지상은 자신만의 온전한 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으로의 성장을 탐하며 ‘프랑켄슈타인’을 만난 그는 시선을 뗄 수 없는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가 하면, 그 누구보다 애처롭고 가엾은 한 인간이자, 괴물로 무대 위에 남아 있었다.
“(괴물의 마지막 대사인) ‘이게 나의 복수야’라는 대사는 복수를 위한 복수가 아니라, 소통을 위한 복수죠. 즉, ‘이게 나의 소통이야’란 뜻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이는 저의 괴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커다란 방향을 담고 있어요. 이 부분을 공연장을 찾는 관객 분들이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