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무죄, 법원 23년 만에 "유서대필 감정에 오류 있었다"

입력 2014-02-1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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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무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 강기훈씨(왼쪽)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와 기자회견을 가졌다. 강 씨가 이 자리에 함께 나온 김상근 목사와 손을 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3년 전 이른바 '자살방조'와 '유서대필'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하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51) 씨가 2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는 13일 자살방조 혐의 등으로 징역 3년이 확정돼 만기복역한 강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91년 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 씨가 '후배 김기설(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씨에게 분신할 것을 사주하고 유서를 대신 써준 혐의'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건이다.

당시 명지대 1학년생이 시위 도중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대학생들의 항의 분신자살이 잇따르자 당시 노태우 정권은 국면전환용 사건이 필요했다.

1991년 5월 8일 김기설이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분신한 뒤 투신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사법부는 배후로 강 씨를 지목했다. 국과수 필적 분석 결과를 내세우며 강 씨를 구속기소했다. 강 씨가 유서를 대신 쓰고 김 씨의 자살을 사주했다는 혐의였다.

그러나 23년이 지난 이날 재판부는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의 감정결과는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글은 문자형태가 단조롭고 쓰기가 쉬워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인 유사성이 나타나기 때문에 희소성 있는 특징이 일관되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판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유서와 동일한 필적이라고 감정한 강 씨의 필적 특징이 반복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 감정인은 또 '해보지'의 '보'자를 '오'자로 잘못 판독했는데 이는 오히려 강 씨의 필적과 유서의 필적이 서로 다르다고 봐야할 유력한 자료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김기설의 필적이 아니라는 당시 감정 결과에 대해서도 "정자체로 이뤄진 기존 필적과 속필체로 된 유서를 단순 비교·판단했다"고 언급했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이 사건과 함께 심리돼 하나의 형이 선고된 국가보안법 혐의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미 복역했던 형에 산입되므로 다시 형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첨언했다.

강기훈 씨는 무죄 판결이 난 이날로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 무죄 선고 공판을 마치고 나온 강기훈 씨는 "재판이라는 게 진실을 전부 다 설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하면서도 "이번 판결은 당시 일련의 과정을 스스로 잘못됐다고 고백한 것이어서 큰 의미가 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어 강기훈 씨는 무죄 판결에 대해 "당사자로서 재판을 받았지만 어쩌면 옆에서 나를 지켜준 사람들이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며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위안과 도움을 준 수 많은 사람들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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