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그늘’… 알짜 기업 지분도 해외에 헐값에 팔린다

입력 2013-12-0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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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악화로 해외 매각 번져…국부유출 vs 경영합리화 논란도

경기악화에 국내 기업의 알짜 계열사부터 지분까지 해외에 매각되고 있다. 국내에 매각하고 싶어도 전반적 경기침체에 별다른 매입자가 나타나지 않자 결국 경쟁력 있는 국내 기업에 눈독을 들여오던 해외 기업이 사들이고 있는 것. 이를 두고 시장 안팎에서는 ‘국부 유출’이란 시각과 제조업의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는 ‘경영 합리화’라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국내 기업 계열사부터 지분까지 줄줄이 매각= 동부제철 인천공장은 중국 최대 철강사인 바오산철강에 인수되는 게 유력시되고 있다. 바오산철강은 국내 투자은행(IB) 업계에 적극적인 인수 의사를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오산철강은 인천공장을 인수해 국내 컬러강판 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미 바오산철강은 지난해 한국지엠의 1차 협력사인 지엔에스와 합작해 경기도 화성에 자동차용 강판 회사인 비지엠을 설립했을 정도로 한국 시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 동부그룹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동부제철 인천공장뿐 아니라 동부하이텍, 동부메탈 등의 계열사 매각을 추진 중이다.

중공업계 상황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STX그룹은 3조원 이상을 투자한 STX다롄을 헐값에 중국에 넘길 전망이다. STX와 산업은행 등 국내 채권단은 다롄시 정부와 중국 공상은행 등 채권단에 STX다롄 청산 의사를 전달했다. STX다롄은 STX와 국내 금융기관·협력업체들이 3조원을 쏟아부은 건조 능력 기준 세계 10위권 조선사다.

또 채권단은 STX프랑스·STX핀란드의 현지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대우조선해양이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에 매각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국내 조선업계의 해외 매각이 번지고 있다.

◇국내 경영악화…인수할 기업도 없다= 알짜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이를 인수하고 싶어도 여력이 되지 않아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반면 자금이 풍부한 일본, 미국, 중국 등 해외 기업들은 이런 상황을 틈타 막대한 자금력으로 손쉽게 인수하고 있다.

웅진그룹 계열사인 웅진케미칼은 최근 일본 소재 기업 도레이의 자회사인 도레이첨단소재에 매각됐다. 국내 대기업인 LG화학과 GS에너지도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회사 가치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을 써낸 도레이를 이길 수 없었다.

대우조선해양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산은은 보유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주식 31.46%를 내년 상반기 중 매각할 계획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매수자가 없어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가 거론되고 있다. 산은은 2008년에도 부실채권정리기금이 갖고 있던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산업은행 보유 지분과 함께 매각을 추진했다 불발된 바 있다.

산은 관계자는 “시장에 매수자만 있다면 언제든 매각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그러나 중공업 시황이 좋지 않아 국내에서는 매수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동부제철이 추진 중인 당진항만 매각도 난항을 겪고 있다. 전략적투자자(SI) 참여를 검토했던 현대제철이 내부 사정으로 방향을 틀면서 투자자 확보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동부제철은 현대제철이 빠진 자리를 메울 대체 투자자로 휴스틸을 선택한 후 다시 협상에 들어갔다.

◇국부유출 vs 경영합리화= 관련업계가 한국 기업의 해외 매각을 보는 시각은 일단 부정적이다. STX다롄 채권자협의회는 지난 5일 기자회견문을 통해 “3조원의 국부 유출뿐 아니라, 함께 중국에 동반 진출한 50여개의 협력사들이 투자한 자산 1400여억원과 한국조선의 핵심 기술은 누가, 어떻게 보호해 줄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산업의 고비용 구조를 저비용으로 바꿔 가는 과정에서의 경영합리화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지만 연세대 교수는 “제조업을 운영하기에는 고비용 사회가 됐고 국내 기업들이 고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왔다”며 “계열사를 포기하면서까지 효율성을 높여 경영을 정상화하려는 노력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 전체에서 고비용 구조를 저비용으로 바꾸지 않으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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